코로나 시대, ‘공연’이 롤·스타 ‘게임’ 찾는 이유

입력 2020-11-03 15:12 수정 2020-11-03 15:17
롤의 가상 걸그룹 K/DA의 '모어'. 라이엇 게임즈 제공


유튜브에 ‘스타크래프트 라이브 콘서트’를 검색하면 독특한 영상이 등장한다. 이 영상에서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가 일사불란하게 연주하는 건 베토벤이 아니라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테란 메인 테마곡이다. 테란·저그·프로토스 세 종족의 우주 전쟁이라는 거대 세계관에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얹히니 한층 웅장하다. 지난해 이 공연을 이끈 게임음악 플랫폼 플래직 채널에 올라온 3개 영상 조회 수는 5개월 만에 50만회를 웃돌고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하위문화로 여겨지던 ‘게임’은 한국 문화를 이끄는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는 게임이 대중문화는 물론 여러 공연 장르와 어우러지며 이채로운 콘텐츠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화두가 된 온라인 공연에 게임 구현 기술과 게임 모티브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최근 가장 활기를 띠는 것은 게임 음악을 활용한 문화 콘텐츠다. 게임이 특유의 세계관을 구현하기 위해 세계 정상급 음악가들과 손잡은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세계적 RPG게임 중 하나인 ‘파이널 판타지’ 1~9편에서 14편의 음악을 책임진 노부오 우에마쓰 등 이름을 떨친 이도 부지기수다.

의정부문화재단이 지난달 31일 선보인 한스짐머 음악콘서트도 연장선에 있는 공연이다. 앞서 ‘인터스텔라’ 등 약 150편의 영화 음악을 만든 거장 한스 짐머는 ‘크라이시스2’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2’ 등 유명 게임 음악도 작업했다. 이날 네이버TV로 생중계된 공연은 42인조 오케스트라 연주 뒤편 스크린에 게임 영상이 흐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세조문화회관 제공


세종문화회관이 게임을 주제로 처음 기획한 ‘리그 오브 레전드 라이브: 디 오케스트라’도 눈길을 끈다. 오는 27~28일 대극장에 오르는 이 무대는 페이커 등 스타를 탄생시킨 최고 인기의 ‘리그 오브 레전드’(LoL·롤) 제작사 라이엇게임즈와 세종문화회관이 지난해 12월부터 기획했다. KBS교향악단 연주로 ‘워리어스’ ‘펜타킬 메들리’ 등 16곡을 100분간 펼쳐놓는 이 날 공연은 대형 LED 스크린을 활용해 롤 시네마틱 영상 등도 상영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공연계가 이처럼 게임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영상·세계관 등이 다채롭게 버무려진 게임이 문화콘텐츠로 풀어내기 수월한 것도 한몫하지만, 잠재 고객을 개발하는 효과가 크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 특히 게임을 즐기는 연령층인 10~30대는 공연장 문화에 익숙지 않은 세대이면서 미래 관객이기도 하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기획 당시 근래 젊은 세대의 공연 접근성이 낮다는 고민이 있었다”며 “공연 만이 아니라 롤 챔피언 코스튬을 한 이들이 세종문화회관을 돌아다니는 등 무대와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행사를 기획 중이다”고 설명했다. 실제 현재 예매 보고서에 따르면 다른 오케스트라 공연과는 다르게 남성 비율이 높고, 20대 비중도 높은 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롤 등 세계적 인기의 게임과 협업하면 해외 행보에도 속도가 붙기 마련이다. 그룹 트와이스는 가상 걸그룹 K/DA 앨범에 참여하기로 했다. 아리·이블린·카이사·아칼리 등 롤 챔피언들로 이뤄진 K/DA는 2018년 롤 월드 챔피언십에서 데뷔 무대를 가지며 화제를 모았던 그룹이다. 앞서 11월 발매를 앞둔 앨범 타이틀곡인 MORE 뮤직비디오는 지난달 29일 공개 돼 하루 만에 조회 수 1200만회를 넘겼다. JYP엔터테인먼트는 “트와이스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여러 글로벌 프로젝트의 하나로 K/DA와의 협업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제공


특히 게임 기술이 비대면 시대 온라인 공연에 속속 도입되고 있다. 게임엔진으로 구동하는 증강현실(AR) 기술과 렌더링(2차원을 3차원 영상으로 바꾸는 기술) 등이 대표적이다. SM엔터테인먼트가 4월 선보인 비욘드 라이브 콘서트 역시 가상 무대를 구현하기 위해 게임 엔진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오는 6~7일 경기아트센터에 올리는 ‘메타 퍼포먼스: 미래극장’도 독특한 게임 기술들이 접목됐다. 온라인에 모인 관객들은 가상 캐릭터를 조종하는 게임 유저처럼 명령어를 선택해 공연을 진행한다. 가령 트위치TV 화면에서 관객은 공연 소개자로 재담꾼과 판소리꾼 중 한 명을 선택할 수 있다. 대금·가야금 등 연주할 악기는 물론 웨어러블 카메라를 차고 있는 현장 관객에게 명령어를 전달해 로비·객석·무대·야외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투표는 다수결이다.

다양한 미디어 전문가가 참여한 이번 공연에는 2013년 카자흐스탄에서 작은 개인 위성을 쏘아 올려 화제를 모은 송호준씨도 참여하고 있다. 방송 시스템 전반을 총괄하는 그는 공연에 게임 모티브를 결합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고 한다.

주최 측은 단순히 기술적 측면 말고도 게임의 본질인 엔터테인먼트와 상호작용이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미래형 극장에도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봤다. 원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은 “인터랙티브한 게임과 달리 온라인 공연의 큰 과제는 관객이 수동적 존재에 머무른다는 것”이라면서 “이번 공연이 넷플릭스 ‘블랙미러: 밴더스내치’처럼 쌍방이 호흡하는 공연을 만들어 나가는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