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말에 눈 질끈… 재판 지켜본 ‘20년 누명’ 윤성여

입력 2020-11-03 05:04 수정 2020-11-03 09:32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재판이 진행된 법정 모습. 증인으로 채택된 이춘재가 이날 출석해 증언했다. 오른쪽 사진은 재심 청구인 윤성여씨. 연합뉴스

“늦었지만 이춘재가 진실을 말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죠.”

살인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20년간 억울한 옥고를 치른 윤성여(53·당시 22세)씨가 자신의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춘재에 대한 복잡다단한 심경을 전했다.

윤씨는 2일 오후 수원지법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나마 이춘재가 진실을 말해줘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며 “늦었지만 그 사람(이춘재)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춘재도 20년 넘게 사회와 단절돼 수감생활했는데 힘들 거다.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아직 100% 만족하지는 않는다”면서 “결심과 선고공판이 남아 있기 때문에 결국 선고까지 가봐야 유무죄가 판가름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이춘재는 이날 법정에서 “제가 저지른 살인 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용생활을 하며 고통을 겪은 분에게 먼저 사죄 드린다”며 “저로 인해 모든 일이 시작됐기 때문에 책임은 제게 있다”고 윤씨에게 공개적으로 사죄했다.

사건 피해자들에게는 “저의 사건에 관계된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며 “반성하고 있고, 그런 마음에서 자백했다. 하루 속히 마음의 안정을 찾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씨는 피고인석에 앉아 증인석에서 진술하는 이춘재의 모습을 내내 지켜봤다.

윤씨는 이춘재가 과거 범행 현장 주변을 묘사하는 답변을 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그 당시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다”는 등의 말을 할 때는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착잡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윤씨의 가족들과 수사를 진행해 온 검찰 및 경찰 관계자들도 법정을 찾아 수의를 입은 이춘재의 모습을 지켜봤다. 이춘재는 피고 측 변호인의 질문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 한 번도 피고 측으로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정면만 응시했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당시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중학생)양이 성폭행 피해를 본 뒤 살해당한 사건이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올해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