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살인마’ 이춘재(57)가 34년 만에 법정에 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실을 털어놨다. 그는 자신이 진범임을 담담하게 말하면서도 자백 경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여성 프로파일러의 손이 예뻐서 만졌다” 등의 황당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이춘재는 2일 오후 수원지법에서 열린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푸른색 수의 차림에 흰색 마스크를 착용한 채 등장했다.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으며 군데군데 흰머리가 성성한 모습이었다. 오랜 수감생활 탓인지 얼굴 곳곳에는 주름도 깊게 패여있었다.
이날 증인신문은 사건 진범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했던 윤성여씨(53)를 대리하는 박준영 변호사가 진행했다. 이춘재는 박 변호사의 질문에 따라 지난 26년간의 부산교도소 내 복역 생활을 설명했다. “복역 기간 동안 외부 봉사활동을 나간 적 있다” “교도소에서 징벌을 받은 적은 없다” “가족 면회 또는 전화통화를 한달에 한번 정도 했었으나 범행 자백 후 단 한차례도 못 했다” 등의 내용이다.
자백 계기를 묻는 말에는 “경찰이 유전자 감식 결과를 가져와서 조사 했는데 첫날은 진술하지 않았다”며 “이후 형사인줄 알았던 여성 프로파일러가 진실을 이야기 해달라고 해 14건(살인)에 대해 사실대로 말하게 됐다”고 밝혔다.
당시 이춘재는 프로파일러의 손을 잡은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 말하면서는 “손이 예뻐서 그랬다. 나는 얼굴이나 몸매는 보지 않는다”며 “손이 예쁜여자가 좋다”는 다소 이상한 대답을 늘어놨다. ‘범행 대상도 손과 관련이 있느냐’는 박 변호사의 물음에는 “그런 것과 관련 없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경찰의 재수사가 시작된 후 상황을 회상하며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다 스치듯이 지나갔다”는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사건이 영원히 묻힐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다. 좀 늦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왜 살인을 저지르게 됐느냐는 질문에는 “지금 생각해도 당시에 왜 그런 생활을 했는지 정확하게 답을 못하겠다”며 “계획하고 준비해서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사유인지는 모르고 당시 상황에 맞춰 (살인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재판이 진행된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한 집에서 13세 여아가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듬해 범인으로 검거된 윤성여씨(53)가 자백해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그러나 이후 윤씨가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2심과 3심 재판부는 이를 모두 기각했다.
20년을 복역한 뒤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올해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개시 결정을 내렸다. 검찰과 변호인 양측은 모두 이춘재를 증인으로 신청했고 재판부가 이를 채택하며 이날 신문이 진행됐다. 다만 법원의 사진 촬영 불허로 언론에 얼굴이 공개되지는 않았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