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외국자본이 6만 평 가까이 매입한 제주 송악산 일대를 문화재 구역으로 지정해 개발사업을 차단하기로 했다. 제주도의회의 잇단 환경영향평가 부동의에도 사업자가 사업 추진 의지를 꺾지 않자 송악산 일대 문화재 지정 추진이란 강수를 내놓은 것이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2일 오전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5일 발표한 ‘청정제주 송악선언’ 실천 첫 번째 조치로 이 같은 문화재 지구 지정 추진 계획을 밝혔다.
제주도에 따르면 송악산 일대는 1995년 처음 유원지로 지정된 후 외국자본이 2013년부터 매입을 시작해 현재 19만1950㎡(5만8000평)이 ‘뉴오션타운 조성사업’ 부지로 편입됐다.
사업자인 중국계 신해원유한회사는 해당 부지에 사업비 3219억원을 투자해 461실의 숙박시설 등을 조성하기로 하고 2013년부터 관련 절차를 이행했으나 지난 4월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가 사업자 측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에 ‘부동의’하면서 자동 폐기됐다. 이후 제주도가 사업자 측에 후속 조치 계획 제출을 요구했으나 1차 제출 시한인 지난 31일까지 미제출한 상태다.
제주도는 내년 1월 문화재 기초조사를 위한 ‘송악산 문화재 지정 가치 조사 용역’을 발주해 연내 문화재청에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현지조사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2022년 4월 문화재 지정 공고가 이뤄지면 국비를 지원받아 문화재 구역과 문화재 보호구역에 속하는 토지를 공공 매입한다는 계획이다.
원 지사는 “송악산이 문화재로 지정되면 문화재 구역에서 반경 500m까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설정되기 때문에 개발을 엄격하게 제한할 수 있게 된다”면서 “이는 청정 제주를 지키기 위한 선제적이고도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도는 사업자가 후속 조치 계획을 제출하더라도 도의회가 제시한 사유가 반영됐는지 여부 등을 꼼꼼히 검토하고, 특히 이번 정책 결정이 번복돼 다른 개발사업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오는 2022년 8월 유원지 지정이 실효되기 전 송악산 일대를 문화재 구역으로 지정해 항구적 보존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위치한 송악산은 높이 104m의 낮은 오름이지만 동·서·남 세 면이 바닷가로 불거져 나온 기암절벽으로 뛰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이중 분화구로, 화산폭발 시 용암의 다양한 퇴적 양상을 관찰할 수 있는 독특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2016년 진행한 세계자연유산지구 확대 타당성 조사용역에서는 도내 화산 가운데 학술 가치와 희소성 측면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중국 침략의 발판으로 삼았던 곳이어서 당시 건설한 비행장, 고사포대와 포진지, 비행기 격납고 잔해 등이 흩어져 있고 해안가의 절벽 아래에는 해안참호 15개소가 남아 있는 등 역사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