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56)가 2일 법정에서 14건에 이르는 살인사건 모두 자신이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지금 생각해도 왜 그런 생활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사전에 계획된 범죄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춘재는 2일 오후 수원지법 형사 12부(부장판사 박정제) 심리로 진행된 ‘이춘재 8차 사건’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첫 살인 범행을 저지른 1986년 이후 34년 만에 처음으로 일반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청록색 수의에 흰 명찰을 단 그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얇게 찢어진 날카로운 눈매는 30여 년 전 몽타주 속 사진과 다름없었다. 눈가에 잡힌 주름과 성성한 흰 머리카락만 기나긴 세월을 실감케 했다.
이춘재는 “사건이 세상이 알려진 뒤에 남은 가족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담담한 목소리로 “몰랐다”고 답했다.
왜 그런 사건을 저지르게 됐느냐는 물음에는 “지금 생각해도 당시에 왜 그런 생활을 했는지 정확하게 답을 못하겠다”며 “계획을 하고 준비를 해서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사유인지는 모르고 당시 상황에 맞춰 (살인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의 사건에 관계된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싶다”며 “반성하고 있고, 그런 마음에서 자백했다. 하루속히 마음의 안정을 찾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덧붙였다.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3)씨는 이날 피고인석에 앉아 증인석에서 진술하는 이춘재의 모습을 지켜봤다.
윤씨는 이춘재가 과거 범행 현장 주변을 묘사하는 답변을 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그 당시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다는 등의 말을 할 때는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춘재는 피고 측 변호인의 질문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 한 번도 피고 측으로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정면만 응시했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중학생) 양이 성폭행 피해를 본 뒤 살해당한 사건이다.
범인으로 지목돼 20년을 복역한 윤씨는 2009년 출소했고, 이춘재의 자백 뒤 지난해 11월 재심을 청구했다.
이춘재는 그동안 이른바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알려져 있던 10건의 살인사건을 모두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수원과 화성, 청주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4건도 이춘재가 저지른 범행으로 밝혀졌다.
이춘재는 1994년 1월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후 현재까지 부산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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