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을 맡아 이춘재(57)와의 대면을 앞둔 박준영 변호사가 “도대체 왜 연쇄살인을 저질렀는지 솔직히 이야기하는 게 이춘재가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의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8차 사건 수사 당시 범인으로 검거돼 20년 옥살이를 한 윤성여(53)씨의 대리인을 맡고 있다. 1988년 9월 16일 당시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한 집에서 13세 여아가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범행을 털어놓은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었다. 그러나 2심과 3심 재판부는 이를 모두 기각했고 윤씨는 20년을 복역하다 2009년 가석방됐다.
윤씨는 지난해 11월 이춘재의 자백이 나온 뒤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지난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춘재는 재심 재판 증인 신분으로 2일 오후 수원지법에 출석한다. 앞서 검찰과 변호인 양측 모두가 그를 증인으로 신청했고 재판부가 이를 채택했었다. 박 변호사는 이날 이춘재에게 약 2시간 동안 질문할 예정이다.
박 변호사는 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춘재와의 첫 대면을 앞둔 소감과 증인신문 계획을 밝혔다. 그는 “(이춘재가) 진범이라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어쩌다가 연쇄살인범이 됐는지, 가학적인 범행 방법이나 시신을 손괴하는 이상한 행태들에 대한 이유를 알고 싶다”며 “연쇄살인범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들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해야 할 뭔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춘재가 자백한 ‘화성 초등생 실종’ 사건을 언급하며 “그가 저지른 여러 범행 중 시신조차 찾지 못한 사건이며 들어야 할 얘기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당시 경찰들의 시신 은닉 같은 부분에 대해 (해당 경찰들이) 다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춘재로부터 사건 상황, 유괴 당시 사용한 물건 등을 확인해야 한다”며 “실종 아동 부모는 아직도 사망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고 얼마 전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이춘재 자백 이후 굉장히 힘들어하셨고 그게 원인이 된 것 같다”고 전했다.
또 법원의 촬영 불허로 이춘재의 얼굴 공개가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면 법상 근거가 없다는 것”이라며 “이춘재는 피의자나 피고인이 아닌 증인이다 보니 그렇다. 재판부도 국민의 알권리나 재판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지만 이춘재의 초상권을 침해하는 법상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춘재에게 2시간 이상 질문할 예정이다. 재판부에서 상당히 많이 배려해주고 있다”며 “원래 사건 관련 부분만 질문할 수 있는데 전체적인 질문을 다 할 수 있게끔 해 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 변호사는 재심의 핵심 쟁점인 ‘강압 수사’ 부분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실제 수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조서 왜곡, 폭행, 가혹행위, 잠을 재우지 않는 행위 등 의미 있는 관련 진술을 많이 했다”면서도 “수사 심문의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계장이라는 사람은 여전히 부인하고 있으며 뻔뻔한 증언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초등생 실종 사건에서도 초등생의 시신을 발견한 뒤 삽을 가지고 오라고 시켜 바로 묻어버린 사람으로 알고 있다. 동일인인 것”이라며 “실종 사건의 의미 있는 점을 이춘재로부터 끌어내 그의 증언이 위증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