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받고 협약 하면 환경과 지역을 팔아먹은 것 아닙니까.” 지난달 27일 충북 청주시에서 만난 내수읍 이장협의회 사무국장 최모씨 목소리에 날이 서 있다. 소각장 증설 반대 대응을 함께 해 왔던 옆 마을 북이면에 대한 배신감이 묻어났다. 내수읍은 지난여름 마을 곳곳에 ‘지역 환경 담보한 발전기금 협약 취소하라’는 현수막을 붙이고, 북이면과 소각 업체 클렌코(옛 진주산업)를 규탄하는 기자회견도 진행했다.
최씨가 ‘팔아먹었다’고 쏘아붙인 곳은 북이면 주민협의체다. 북이면은 인구가 5000명도 채 안 되는데 집단 암환자가 발생해 지난해 말 환경부가 건강영향조사를 결정한 곳이다.
그런데 같은 날 만난 협의체 사람들도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북이면 주민협의체 위원장 서모씨는 “(내수읍 이장협의회가) 2016년 소각장 증설 당시 주민들을 위한 어떤 조치도 받아내지 못했다. 그 때 이후로 주민 갈등이 커졌다”고 반박했다. 서씨는 증설 반대 활동 중 송사에도 여러 번 휘말렸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던 다른 협의체 위원은 “그 마을 사람들이 지금 무슨 할 말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거들었다.
내수읍과 북이면은 석화천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맞닿아 있다. 최씨와 서씨는 내수읍, 북이면 토박이다.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낸 친구였다. 2016년 마을에 소각장 증설 소식이 처음 들렸을 때도 의기투합 했었다.
하지만 지난 4년, 이들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어졌다. “서로 이해하고 도왔던 친구였는데….” 말끝을 흐린 최씨 표정이 씁쓸해 보였다.
소각장 마을의 또 다른 비극
사건의 발단은 2016년으로 되돌아간다. 당시 북이면에는 클렌코를 비롯한 소각장 3곳이 자리 잡은 상태였다. 1일 소각용량 100t 미만이던 클렌코가 용량을 3배 이상 늘리겠다고 나섰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살면서 다이옥신이라는 단어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 때 처음 알았다.” (서 위원장)
‘더는 안 된다’는 생각에 북이면과 내수읍이 공동행동에 나섰다. 북이면 51개 마을과 내수읍 57개 마을 이장단협의회 대표들과 주민들은 ‘내수·북이 진주산업 증설반대 추진위원회(추진위)’를 만들고 시청, 환경부를 돌며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최 사무국장도 직접 쓴 손 팻말을 들고 읍내를 돌며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소각장 증설은 강행됐다. 그리고 그해 말 검찰은 클렌코가 폐기물을 과다 소각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다이옥신을 허용 기준(0.1ng)의 5배 이상 배출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주민들 사이에선 ‘마을에 암 환자가 40~50명 발생할 이유는 밀집된 소각시설 탓’이라는 의심이 커졌다.
청주시는 클렌코의 폐기물 처리업 허가 취소를 결정했는데, 업체는 행정소송을 벌여 이를 뒤집었다. 검찰이 기소한 과다 소각 등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 판결이 나왔다. 4년간의 싸움에 주민들은 지쳐갔고, 내분도 시작됐다. 기대했던 소송에서 업체가 연달아 승리하자 의견이 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돈을 받고 증설을 허가해 줬다” “잘못 대응해서 얻은 게 없다”는 식의 이견이 쌓였다. 그 사이 클렌코 측은 북이면 주민협의체 측과만 20억원 규모의 상생협약을 맺었다. 내수읍 사람들은 “(증설을 위한) 업체 측 설계변경 문제로 시가 다시 업체와 소송을 벌이고 있는데, 그 재판에 유리하게 할 목적으로 협약을 맺은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협의체 측은 “소송이 끝나면 지역 발전을 위한 기금을 받기로 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청주에 밀집된 소각시설
북이면과 내수읍 갈등은 폐기물 처리의 지역불균형이 만든 비극이다. 인구가 84만명인 청주는 전국 일평균 소각량의 18%를 처리한다. 전국의 쓰레기가 청주에 모여 태워진다는 의미다. 청주에서 소각되는 물량 중 70%는 외부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이다.
이런 불균형은 정부가 만들어 냈다. 1994년 수도권정비계획법, 2003년 수도권대기환경개선에대한특별법으로 서울과 수도권의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규제를 피하면서도 입지가 좋은 지방으로 소각장이 몰렸다.
김홍석 청주시 자원정책과 폐기물지도팀장은 “당시만 해도 지방 교통이 좋지 않았고, 청주가 국토의 정중앙으로 접근성이 좋아 소각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번 소각장이 들어오니 낙인효과가 생겼다”고 말했다. 땅값이 떨어지고, 지형상 규제도 적어 소각장이 들어오기 쉬운 입지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소각장 밀집을 막을 수단은 약했다. 민간기업에 적용되는 폐기물관리법에는 소각장 간 거리나 숫자에 대한 제한이 없다. 하루 처리용량이 100t이하면 환경영향평가나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도시계획시설결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일 소각량 100t 이상이면 주민 의견을 듣는 절차가 진행되는데, 이때도 주민 과반수 동의가 필수요건은 아니다. 결국 지자체로서는 업체가 요건을 갖춰 허가 신청을 내면 받아줄 수밖에 없다.
폐기물은 매년 넘쳐나고, 태울수록 돈을 받으니 업체는 증설을 노린다. 북이면과 증평군의 경계에 있는 한 소각시설은 지난해 99.8t인 소각용량을 480t으로 증설하려다가 주민 반대와 시의 불허로 후퇴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업체가 다시 소각시설 증설을 추진할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박완수 증평군 대책위원장은 “그동안 사례를 보니 업체가 주민들을 무력화하는 사전작업을 하면서 진빼기를 하는 것 같더라. 결과적으로 주민들끼리도 갈라지고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도 생기게 된다”며 “지금 소각하는 걸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더 늘리는 걸 반대하는 건데 왜 이렇게 괴롭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청주시청 관계자는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시설도 아닌데 소각시설이 (많이) 들어와서 주민들이 피해는 피해대로 입고 있다. 이 분들은 무슨 죄냐”며 “우리도 안타까울 뿐”이라고 했다.
정책의 빈틈이 만든 주민 갈등
소각 및 매립은 폐기물 자원순환의 마지막 과정이다. 그런데 폐기물을 배출하는 곳과 처리하는 곳 사이 균형이 깨지며 타 지역 폐기물을 처리해주는 청주와 같은 지역이 생기게 됐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지난 4월 전국폐기물발생 및 처리현황을 분석한 ‘폐기물처리시설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중장기 발전방안’에는 이 같은 지역 불균형의 심각성이 여실히 담겨있다. 폐기물 총 발생량은 경기, 충남, 서울(발생량 순)이 전체의 42.1%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 지역의 자체 처리량은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지자체에서 처리하지 못한 나머지 폐기물을 타 지역으로 반출해 위탁 처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는 생활폐기물 매립장이 없어 전량 인천시로 반출해 처리한다. 사업장폐기물의 경우 민간소각시설이나 민간매립시설도 없어 공공처리시설에서 연계처리하거나 다른 지역에 위탁 처리한다.
서울처럼 매립장 자체가 부족한 곳에서 나오는 폐기물은 전국을 떠돌게 된다. 대체로 충남, 충북, 전남, 전북, 경북에 타 지역의 매립 사업장폐기물이 대거 유입돼 처리되고 있었다.
특히 충남과 충북은 폐기물 누적량이 매우 적어 외부 반입 폐기물이 상당수였다. 충북은 생활폐기물 발생량이 처리량보다 적었다. 충남은 매립 사업장 폐기물의 상당량이 타 지역에서 유입되고 있었다. 이러한 불균형은 현장에서도 느껴지고 있었다. 지난달 27일 청주 북이면에서 폐기물 소각업체를 오가는 차량을 감시하던 북이주민협의체 관계자는 “강원도 태백에서까지 쓰레기차가 오더라”며 “이 지역에서 나오는 게 얼마나 되겠나. 전부 타 지역에서 온다”고 토로했다.
님비(NIMBY)에 의한 피해는 청주 등 기존 폐기물 처리 시설 밀집 지역에 집중된다. 이는 매립 및 소각 시설의 균형적 확충을 막는 요인으로 다시 작용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매립장은 전체 용량에 도달하면 물리적으로 종료되지만 소각장은 한번 허가받으면 영원히 운영된다. 결국 오염물질 증가, 지역주민 갈등과 같은 악순환은 이미 시설이 들어와 있는 특정 지역에서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국이 난리
폐기물 최종 처리가 막히면 자원 순환은 불가능하다. 비용 상승으로 인한 폐해는 폐기물 재활용 업체, 폐기물 선별업체, 폐기물 수거업체에 악영향을 준다(기사 하단 연재 ‘이슈&탐사’ 참조). 처리 시설 확충은 불가피한데, 폐기물 처리 불균형으로 인한 갈등은 전국에서 진행 중이다.
전남 나주시와 광주광역시도 극심한 대립 중이다. 나주시 신도 일반 산업단지에 위치한 SRF 발전소 때문이다. SRF는 폐기물을 이용해 만든 고체 재생 연료다. 발전소에서 이를 태워 열과 전기를 생산해 지역에 공급한다. 한국난방공사는 2700억원을 들여 이 발전소를 2017년 12월 완공했지만 주민들이 강력히 반대해 가동조차 하지 못했다. SRF 소각시 다이옥신 등 독성 물질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게 우려된다는 게 나주시민들의 주장이다. 신도 산업단지는 나주 혁신도시 빛가람동 초·중·고교, 아파트 단지와 직선거리로 2㎞ 이내다. 특히 나주 SRF 발전소에 광주 쓰레기로 만든 SRF가 쓰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 갈등의 불을 지폈다.
나주시민들은 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를 꾸려 발전소 가동을 막았다. 전남도와 나주시, 산업부, 한국난방공사는 범대위와 지난해 ‘나주 SRF발전소 민관협력 거버넌스 위원회(거버넌스)’를 구성, 갈등 해소에 나섰지만 파행으로 끝났다. 범대위는 거버넌스를 탈퇴하고 모임을 해체해버렸다. 대신 나주시민들이 비대위를 구성해 매주 월요일 차량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김철민 나주시의원(무소속)은 “SRF 발전소에서 처리할 일일 소각량이 444t이었고 그중 광주 쓰레기가 360t, 나주시 쓰레기는 13t”이라며 “광주 쓰레기까지 떠넘기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도 비슷한 상황이다. 강원도 원주도 수년간 SRF 발전소 탓에 갈등이 심하다. 해당 발전소 건설 계획은 문막에 조성될 화훼단지에 열 공급을 한다는 명목으로 추진됐다. 하지만 주민 반대로 최근 계획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주민들은 대기 오염 등에 대한 우려와 함께 “원주가 전국 쓰레기 소각장이 될 것”이라고 강력 반발해왔다. 해당 발전소의 SRF 하루 사용량은 529t인데, 원주지역 SRF 하루 총 생산량 124t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발전소 부지 소유주인 한국산업단지공단은 발전소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며 부지를 제조업 용도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힌 상태다. 화훼단지 조성 계획도 좌초됐다.
충북 내포신도시에서 추진됐던 SRF 발전소는 2018년 결국 에너지원을 LNG로 변경하기로 했다. 신도시 주민들은 인근 홍성과 예산에서 하루에 배출되는 쓰레기양은 약 140t인데도 발전소에는 하루에 약 780t이 소각될 예정이어서 오염 피해가 막심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수도권 매립지 문제는 수도권 전역을 갈등 지역으로 만들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인천시가 오는 2025년 매립지 사용을 종료할 것이라는 입장을 굳히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허승은 녹색연합 활동가는 “내 눈에 안보이면 (쓰레기가) 처리됐다고 착각하게 된다. (정부가) 그렇게 뒀던 것”이라며 “발생지처리 원칙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주=문동성 임주언 박세원 기자,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값싼 쓰레기 정책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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