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기든 똑같이 나쁘다”…美대선 앞둔 中 복잡한 속내

입력 2020-11-01 17:21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1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뉴타운에서 유세 연설을 마친 뒤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미 대선 전 마지막 주말인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핵심 경합주 중 한 곳인 펜실베이니아에서만 4곳을 누비며 막판 총력 유세를 벌였다. AP연합뉴스

사흘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을 바라보는 중국의 속내는 복잡하다. 지난 4년간 중국 때리기에 집중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든,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새로운 대통령이 되든 미·중 관계는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대중 압박 정책을 폈지만 중국이 그로 인한 반사이익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느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중국에 유리한가.

민족주의 성향의 중국 매체 환구시보 총편집인인 후시진은 지난 31일 글로벌타임스에 실은 칼럼에서 이렇게 질문을 던진 뒤 “똑같이 중국에 나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는 공식적인 말이 아니라 진실”이라며 “뉴욕타임스, CNN 등 미국의 주류 언론들이 모두 민주당의 열렬한 지지 세력임에도 중국을 향해 얼마나 악랄한 태도를 보여왔는지 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테네시주 내슈빌의 벨몬트 대학에서 열린 대선후보 마지막 TV 토론회에서 공방을 벌이는 모습. AFP연합뉴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중국만큼 분노와 불만의 감정을 갖고 미 대선 상황을 지켜보는 나라는 없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서 미·중 관계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중국인은 별로 없고, 중국 정부 입장에서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보다 상대하기 더 까다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민신 페이 클레어몬트메케나대 교수는 흥미로운 관전평을 내놨다. 중국계 미국인이면서 미·중 관계 전문가인 그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줄 선물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선거 결과 불복에 따른 극심한 정치적 혼란이 그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해 중국 책임론을 흐렸고, 중국식 대응이 효과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한 미국 우선주의 외교 정책은 전통적인 동맹국들을 이탈시켜 반중 연합 전선을 구축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1일(현지시간) 미시간주 플린트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지원하는 드라이브인 유세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페이 교수는 “중국 지도자들은 미국의 이런 혼란을 ‘쇠퇴 징후’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미국에서 선거 불복이 현실화되고 진영간 치명적인 충돌이 일어난다면 중국 관영 매체들은 이런 종말론적인 장면을 계속해서 내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을 공공의 적으로 생각하는 아시아권 국가들이 트럼프 대통령 재선을 지지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우방국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중국과 각을 세운 아시아 국가에서는 트럼프 당선을 바라고 있다는 설명이다.

영국 BBC 방송은 중국을 적으로 여기는 국가로 홍콩, 대만, 베트남, 일본을 꼽았다. BBC는 홍콩에서는 오직 트럼프 대통령만이 중국 공산당을 상대할 수 있다는 정서가 있다고 평가했다. 미·중 갈등 국면에서 미국과 밀착하고 있는 대만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빅 브라더’로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을 위협으로 인식하는 베트남과 일본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지지하는 여론이 있다고 BBC는 전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