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요건 강화가 그대로 진행되면 국내 주식 중 절반은 팔아치울 겁니다. ‘세금 내는 기계’로 전락할 순 없으니까요.”
정부가 내년부터 주식 양도소득세(22~33%)를 부과하는 대주주 기준을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추는 세법 개정안을 고수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특히 한 종목의 주식 보유액이 3억원 이상으로 ‘예비 대주주’에 해당되는 개인들의 올 연말 국내 증시 이탈은 현실화될 전망이다.
1일 국민일보는 3억원 요건이 시행되면 대주주로 분류되는 개인 투자자 3명에게 정부안에 대한 의견과 향후 투자 계획 등을 물었다. 이들은 대주주 요건 강화가 실시되면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을 대폭 낮추고, 해외 주식 등 새로운 투자처를 찾겠다고 입을 모았다.
30여년간 주식 투자를 해온 A씨(61)는 현재 국내 자동차 종목을 5억원어치 보유하고 있다. A씨는 이날 전화인터뷰에서 “‘대주주 3억원’이 시행되면 국내 주식을 갖고 있을 유인이 없다. 50% 정도 매도를 할 것”이라며 “요즘은 해외 주식 거래가 훨씬 간편해진 만큼 미국 주식을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코스닥 바이오 종목을 6억원 가량 보유 중인 B씨(59) 역시 “대주주 요건을 철회·유예하는 조짐이 안 보이면 연말 전에 상당 부분 팔 것”이라며 “양도세를 좀 내더라도 테슬라·애플처럼 성장이 보장된 미국 주식으로 돌아설 것 같다. 더 이상 개인을 차별하는 국내 증시에 남아있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코스피 종목을 6억원 정도 갖고 있는 직장인 C씨(39)는 “해당 종목 보유액을 3억원 이하로 낮추고, 예수금으로 보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대주주 요건 강화는 현실과 괴리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A씨는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에서 주식 투자는 자산을 불리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라며 “부동산이 수십배 오를 동안 주식은 10년 전 가격인 종목도 허다하다. 오히려 증시를 부양하는 정책이 필요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B씨는 “3억원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값으로도 모자라는데, 이 정도 액수에 세금을 매기겠다는 정책은 국민을 세금 걷는 도구로밖에 보지 않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C씨는 “3억원이 어떤 기준으로 정해졌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양도세를 부과하겠다고 하니 내 자산을 빼앗기는 느낌만 든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자와의 역차별 문제도 제기됐다. 외국인은 이번 대주주 범위 확대에서 예외고, 기존 대주주 기준(종목당 지분율 25% 이상)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B씨는 “외국인, 기관들만 접근할 수 있는 공매도 제도에 이어 ‘기울어진 운동장’을 심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C씨는 “정부는 외국인의 무차입 공매도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면서 개인들에게만 세금을 내라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동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 증시 회복에 일조한 ‘동학개미’에게 타격이 가는 정책이라고도 했다. A씨는 “‘주식 부자’들은 대주주 요건이 강화돼도 단기적 타격만 입고, 이들이 쏟아내는 매도 물량 때문에 결국 소액 투자자들이 손실을 볼 것”이라며 “경제가 안 좋으니 주변에 목숨 걸고 주식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우려된다”고 말했다. B씨는 “코스피가 1400선까지 떨어졌을 때 외국인, 기관은 ‘팔자’였지만, 동학개미가 들어와 지수를 지탱한 것”이라며 “그런데도 대주주 요건 강화로 개인들만 손해를 보게 생겼다”고 말했다.
예비 대주주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대주주 요건에 반대하는 소액 투자자도 있었다. 3년 전부터 주식 투자를 해온 D씨(21)는 “3억원 기준이 현실화되면 나같은 ‘개미’부터 피해를 볼 것”이라며 “우리 2030세대는 부동산은 엄두도 못 내고, 큰 돈 벌 방법은 주식 밖에 없다고 생각해 뛰어들었는데 벌써 투자심리가 약화되고 있는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동학개미들의 분노가 점점 커지고 있다. 대주주 요건 10억원 유지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700만명 주식 투자자와 연대해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주주 양도세 범위 확대를 반대하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21만6844명의 동의를 받았다. 답변 시한은 2일이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