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해도 안되는’ 야당…구심점은 없고, 쇄신은 말많고

입력 2020-11-01 16:45
국민의힘 김종인(오른쪽) 비상대책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가 1일 국회에서 연 긴급 기자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간담회는 더불어민주당의 내년 4월 보궐선거 공천 추진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연합뉴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지리멸렬한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급등, 전세대란은 물론 권력형 비리 의혹에 휩싸인 펀드 사기 사태에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여권의 악재가 잇따르는데도 국민의힘 지지율은 답보 상태다. 국민의힘은 4월 21대 총선 참패 이후 잇따라 쇄신책을 발표하는 등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들을 끌어모으는데는 역부족이다. 일각에선 ‘뭘 해도 안 되는’ 야당이라는 냉소섞인 비판도 제기된다.

이는 집권 4년차를 맞은 정부·여당의 실정을 야당 지지층으로 흡수할 수 있는 야당의 구심점이 없어서 빚어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5월 27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 이후 제시된 국민의힘 쇄신책이 파열음을 빚은 데다 극우와 중도 사이의 모호한 스탠스를 벗어나지 못한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민일보가 1일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최근 5개월간 국민의힘 지지율(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을 분석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대부분 20% 안팎에 머물렀다.

김종인 비대위 출범 이후 눈에 띄는 지지율 상승세는 지난 8월 11~13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한 차례 나타났다.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33%)과의 격차를 불과 6%포인트 차로 좁힌 27%로 조사됐다. 이는 2016년 국정농단 국면 이후 양당 격차가 가장 좁아진 수치였다.

여기에는 김 위원장이 “보수라는 말도 쓰지 말라”면서 쇄신책을 추진한 데다 기본소득을 비롯한 이슈를 선점하며 보수정당의 변화에 안간힘을 쓴 점이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상승세는 채 일주일을 못 갔다. 8·15 광복절 보수집회를 기점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더욱이 10월 7~26일 진행된 21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 기간에도 소폭 하락했다. 김 위원장이 8월 19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지만 하락세를 막지 못했다. 9월 2일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꾸고 기본소득 개념을 도입해 정강·정책을 개정한 후에도 지지율 반등은 없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당내에선 지지율 침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김 위원장도 최근 비대위원들과의 차담회에서 “8·15 때 명분을 잃어서 꺾였다. 우리가 좀 흐트러졌다. 정신차려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광복절 보수단체 집회가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국민의힘의 상승세가 꺾였다는 시각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정부·여당의 정책 실패를 야당의 지지율로 가져올 만한 구심점이 없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국민들이 신뢰할 만한 야당의 리더가 없다보니 ‘정부·여당이 싫어도 국민의힘은 찍기 싫다’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 중진 의원은 “야당 대선주자들은 한 자릿수 지지율인데 윤석열 검찰총장이 두 자릿수로 나타난 것 자체가 야당에 인물이 없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8월 19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추모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야당의 국정 견제와 정부·여당의 실책이 뚜렷하게 대조될 수 있는 국회 국정감사 기간에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히려 떨어진 것은 야당으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지난 9월 21%를 기록했던 지지율이 10월 들어 내려가더니 국감 막바지인 지난 10월 20~22일 실시된 여론조사엔 최저치인 17%를 찍었다. 정치권에선 ‘제1야당 실종론’까지 거론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여당 실책에 기댄 야당 지지율
이런 현상을 놓고 그동안 5개월여간 그나마 국민의힘 지지율이 20% 안팎으로 유지된 것 자체가 정부·여당의 실정에 힘입은 결과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중간에 다소 올라갔더라도 그것은 반사효과 때문”이라며 “이번 국정감사를 보면 야당의 무능은 이미 확인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 여당이 일사천리로 밀어붙인 부동산 3법 등 부동산정책 실패 논란이 비등했을 때 국민의힘은 지지율 최고치(27%)를 찍었다. 당시 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조국 사태’가 이슈화됐던 지난해 10월 이후 최저치인 39%로 떨어졌다. 이때는 21대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도입을 밀어붙인 거대 여당에 대한 견제심리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야권 일각에선 과거 여론 추이를 근거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내년 4월 보궐선거에 이어 대선을 앞에 두고는 결국 지지층이 결집해 여야 1대1 대결구도가 형성될 것이라는 기대다. 19대 대선을 1년 4개월여 앞둔 현재와 비슷한 시점의 여론조사를 보면 야당 지지율은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저조했다. 2016년 1월 5~7일 실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에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40%를 기록한 반면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은 21%에 그쳤다.

다만 당시는 현재 국민의당과 달리 야당의 구심점이 이미 드러나고 있던 상황이었다. 갤럽이 2016년 1월 12~14일 진행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16%, 안철수 의원 13%,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12% 등 순으로 나타났다.

김종인(오른쪽)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0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특수고용직 노동자 및 관계자 초청 대담에 참석해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호한 스탠스’에 힘 빠진 쇄신
전문가들은 극우와 중도 사이의 어정쩡한 스탠스가 자초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국민의힘이 광복절 집회 불참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등 이른바 태극기세력과 단절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는 얘기다. 강성 보수층을 끌어안은 동시에 중도층을 공략하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종인 비대위의 쇄신책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굳어진 이른바 ‘비호감 이미지’를 뒤집기에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서울의 한 당협위원장은 “영남 중심의 당 이미지를 깨버리지 못한 탓”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에 아직 실질적인 변화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김종인 비대위가 기본소득뿐 아니라 노동법 개정 등 이슈를 던졌지만 소속 의원들과의 소통을 거치지 못한 카드라는 불만도 상당하다. 야당 의석수를 감안하면 이런 이슈가 입법으로 연결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막말 안 한다’ ‘색깔론 안 한다’ 등의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다음 스텝으로 가든 대선주자가 뜨든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종인 비대위 흔들기는 계속되고 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이날 “103명 의원 중 당을 맡아 운영할 제대로 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냐”며 “그렇게 또 도살장 끌려가는 소가 되려고 하냐”고 비난했다. 이에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금 김종인 비대위는 패배의 그림자를 지우는 중”이라며 “시간을 더 줘야 한다”고 반박했다.

김경택 이상헌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