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슬퍼하네요” 이동국 은퇴경기 몰린 전북 팬들

입력 2020-11-01 14:45 수정 2020-11-02 10:46
전북 팬 김새한(왼쪽)씨와 김동섭씨.

“이동국 선수가 은퇴한다니 하늘도 슬퍼하는 것 같네요.”

전북 현대의 ‘레전드’ 이동국(41)이 은퇴 경기를 갖는 1일 전주 시내에는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축구 팬 뿐만이 아닌 모든 전북 도민들에게 ‘이동국’이란 한 선수가 갖는 의미는 컸다. 택시 기사 송치선(60)씨는 “이동국이 전북에서 뛰기 시작한 뒤 축구 팬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며 “은퇴하는 날이 되니 갑자기 비가 내리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동국 등번호 마킹 장면.

경기가 열리는 전주월드컵경기장 앞에는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수 백 명의 팬들이 줄을 섰다. 이동국의 은퇴 경기를 기념해 유니폼에 이동국 마킹을 하기 위해서다. 남녀노소 팬들은 전북의 녹색 우비를 입고 거센 비를 맞으면서도 마킹을 위해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 전북 구단 관계자는 “오늘 90% 이상의 팬 분들이 이동국 선수를 마킹하셨다”고 밝혔다.

직장인 이경희(32)씨는 두 개의 유니폼에 모두 ‘이동국’과 등번호 ‘20’번을 새겼다. 입고 있는 유니폼까지 포함하면 홀로 유니폼만 3개. 그는 “오늘은 레전드 이동국 선수의 은퇴 경기인 데다 제가 앉는 좌석이 선수들이 입장하는 W석 쪽이라 유니폼 두 개를 더 구매해 마킹했다”며 “제 좌석 좌우에 거리두기로 남는 좌석을 이동국 선수 등번호로 채워 입장하실 때 좌석이 꽉 채워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 씨는 마킹을 하기 위해 현재 거주지인 경기도 파주에서 오전 8시30분에 출발해 전주에 도착했다고 한다. 전북이란 구단이 자신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보다도 크기 때문이다. 그는 “몇 년 전 머리 혈관이 좁아져 쓰러져서 삶이 힘들고 아무 것도 하기 싫었을 때 이용 선수가 부상을 극복하고 운동을 계속 하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전북 팬이 됐다”며 “전북 경기에 빠져서 응원하다보니 질병과 무기력증이 모두 극복됐다”며 미소 지었다.

이동국 마킹만 두 개를 한 전북 팬 이경희씨.

줄이 너무 길다보니 마킹을 포기하고 좌석으로 발길을 돌리는 팬들도 있었다. 대학생 김동섭(26)씨는 “이동국 선수 은퇴 경기라 줄이 평소보다도 더 긴 것 같다”며 “이동국 선수 마킹을 한 유니폼을 갖고 있지만 은퇴 경기니까 기념으로 새로 마킹을 하려고 했는데 아쉽다. 경기를 뛰는 모습을 보면 많이 뭉클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온 직장인 김새한(30)씨도 “중학생 때부터 팬이 됐고, 이동국 선수가 있어 첫 우승부터 최다 우승에 도전하는 현재 구단의 모습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10년 넘게 함께해 당연히 항상 같이 있을 거라 생각한 선수인데 떠난다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이어 “이렇게 예매가 치열했던 경기가 없었는데 다행히 일반석 예매라도 했다”며 “이동국 선수의 마지막 경기에 우승컵을 드는 역사적인 순간에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고, 나중에 자식들한테 말해주고 싶다”며 미소 지었다.

유니폼에 이동국 등번호를 마킹하기 위해 경기 시작 전부터 줄 선 전북 팬들.

전주=글·사진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