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007’ 시리즈의 초대 제임스 본드로 활약한 숀 코너리가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비보를 접한 동료 배우와 팬들의 애도도 이어지는 중이다.
31일(현지시간) 영국 BBC 등 해외 언론들은 코너리가 그동안 거주하던 바하마에서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최근 건강 상태가 악화해 요양하던 코너리는 잠을 자다 세상을 뜬 것으로 알려졌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제1장관은 “우리나라는 오늘 우리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다”며 그에게 애도를 표했다.
1930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난 코너리는 화물차를 운전하는 아버지와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났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학교를 중퇴하고 우유 배달부 등으로 일하던 그는 성인이 되고 배우의 길을 걷기로 한다.
그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건 첩보 영화의 원조 격인 007 시리즈다. 그는 5950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벌어들인 첫 007 시리즈 ‘007 살인번호’(1962)에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7편의 007 시리즈에 출연해 역대 제임스 본드 가운데 가장 선명한 족적을 남겼다. 지금도 제임스 본드로 코너리를 떠올리는 팬들이 적지 않을 정도다.
007 시리즈 말고도 ‘오리엔트 특급살인’(1974) ‘장미의 이름’(1986) ‘언터처블’(1987)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1989) 더록(1996) 등 여러 작품에서 굵직한 연기를 보여주며 사랑받았다. 1988년 영화 ‘언터처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고 2000년 영국 여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은 그는 2006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동료 배우와 팬의 추모도 이어지고 있다. 그의 뒤를 이어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은 영국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는 “숀 코너리는 제임스 본드만이 아니라 훨씬 많은 인물로 기억될 것”이라면서 “그가 스크린에서 보여준 매력은 메가와트 수준으로, 현대의 블록버스터를 창조하는 데 일조했다”고 평가했다. 오스카상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는 트위터에 “오늘 우리는 전설적인 배우를 기린다”며 “오스카를 수상한 그는 제임스 본드 역할을 했던 때부터 우리 영화 공동체와 삶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고 애도했다.
다만 코너리는 여성을 향한 폭력적 언행들로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여성을 때리는 게 추호도 잘못됐다고 생각지 않는다”며 여성 폭력을 정당화해 비난받았다. 코너리의 전 부인 다이앤 클라이언토도 2006년 자서전에서 코너리의 가정 폭력을 고발한 바 있다. 자녀로는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제이슨 코너리 한 명이 있다.
영국의 높은 소득세 부담을 피하려 1970년대부터 바하마에 거주한 코너리는 모국 스코틀랜드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내비쳤다. 영국으로부터 스코틀랜드 독립을 지지해온 그는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귀향하겠다는 의사도 밝혔었다. 하지만 결국 모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