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사태’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연일 ‘옥중 폭로’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주장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면서 진위 여부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신뢰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미 그의 주장 중 일부분에 대해서는 법원이 이미 판단을 내렸다. 김 전 회장은 동향 친구인 김정훈 전 청와대 행정관에 대한 금전 제공이 대가성 없는 호의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 전 행정관 1심 재판부는 이를 뇌물로 판단하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김 전 회장은 최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김 전 행정관에게 제공한 법인카드가 뇌물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막역한 고향 친구’가 청와대로 파견돼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워 본인 소유의 법인카드를 줬고, 무직이었던 김 전 행정관의 동생을 스타모빌리티 이사진에 올려 급여를 받게 해준 게 전부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과 김 전 행정관 모두 라임 사태와는 연관성이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김 전 행정관 1심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이 금품을 건넨 시점에 대해 이미 라임과 깊게 연루된 이후라고 봤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2019년 3월 스타모빌리티의 경영권을 획득한 김 전 회장은 같은 해 4월 라임으로부터 400억원을 투자받았다. 김 전 회장이 법인카드를 제공한 때는 그로부터 한달 뒤다. 그는 이 무렵 법인카드뿐 아니라 시계 구입비용 명목으로 현금 150만원을 건네기도 했다. 김 전 행정관의 동생을 스타모빌리티 이사진에 올린 것 역시 같은 해 7월이다.
‘청와대로 영전한 동창’과 금전 관계로 얽힌 김 전 회장은 지난해 7월 라임 환매중단 사태가 언론에 보도되며 문제가 본격화되자 행동에 나섰다. 그는 김 전 행정관에게 라임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조사 자료를 건네달라고 요청했다. 김 전 행정관은 금감원 조사가 시작된 당일이었던 지난해 8월 21일과 22일 유흥주점과 청와대 앞 도로 등에서 김 전 회장에게 금감원 자료를 열람하게 했다.
김 전 회장은 이 대목에서도 절친한 사이임을 재차 부각하며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라 항변했다. 금감원 조사를 앞둔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의 간곡한 수차례 부탁으로 인해 자료를 요청한 것이고, 김 전 행정관은 3번씩 거절했으나 친구인 자신의 부탁을 끝내 거절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이 전 부사장에게 책임을 돌렸다.
친구 관계를 강조하는 것은 재판에 넘겨진 김 전 행정관의 변호 논리이기도 했다. 김 전 행정관은 그간 재판에서 “김 전 회장과 동향 출신에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사업이 잘 되는 친구가 밥값 등을 내주는 관계로 생각해 법인카드와 술값, 골프비 등을 받았다”면서도 “거절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잘못을 매우 반성하고 있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그럼에도 1심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이 제공한 금품을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김 전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지 않았다면 라임 조사 관련 자료를 요구하는 김 전 회장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범죄로 나아가지 않을 가능성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며 “이 같은 뇌물죄를 엄단하지 않는다면 그에 수반될 수 있는 수많은 부정행위를 막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두 사람이 오랜 친구사이였다는 점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판부는 “다수 뇌물범죄는 학연, 지연 등 기타 사적 인연으로 얽힌 사이에서 발생한다”며 “이를 활용해 공무원에게 대가를 지급하고 원하는 바를 얻는 행태는 국민들에게 공정성에 대한 의심과 박탈감만을 더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