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정부가 주식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기준을 현행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추는 방안을 지속 추진할지를 두고 갈등을 이어나가고 있다. 조만간 열리는 당정협의에서 대주주 기준을 확정한다는 방침이긴 하지만 정부와 여야 모두 제각각으로 이견을 보이는 터라 쉽게 매듭지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는 이와 관련해 청원 게시판에서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해임 요구안에 대한 공식 답변을 내놔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대주주 3억원 기준 둘러싼 정부·여·야 입장 차이
1일 기재부 등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내년부터 주식 한 종목당 보유 금액이 3억원 이상일 경우 대주주로 규정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는 10억원 이상일 경우 대주주로 보고 양도차익에 22~33%(지방세 포함)의 양도세를 부과하고 있다.
당초 정부는 대주주 요건을 확대하는 데 이어 주식 보유액에 대한 계산의 경우 주주 당사자는 물론 사실혼 관계를 포함한 배우자와 부모·조부모·외조부모·자녀·친손자·외손자 등 직계 존비속 등 특수관계자가 보유한 주식을 모두 합산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른바 ‘동학 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이 ‘현대판 연좌제’라고 거세게 반발하면서 기재부는 가족 합산을 개인별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즉 정부는 대주주 기준 강화안(10억→3억원)은 예정대로 시행하되 가족 합산을 개인별로 바꾸는 절충안을 내놓겠다는 방침인 것이다. 그러나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는 정부안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민주당은 대주주 요건을 3억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2년 동안 유예해야 한다고 정부에 제시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내년 우선 대주주 요건을 10억원으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3년부터 주식 양도차익에 전면 과세가 이뤄지는데 그 전에 기준 변경으로 시장에 불필요한 충격을 줄 이유가 전혀 없다는 이유에서다.
야당은 한발 더 나아가 정부안을 원천 무효화하는 법안을 내놨다.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은 주식 양도차익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기존 10억원으로 유지하고 가족 합산 조항도 폐지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최근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기존에 시행령으로 규정돼 있던 주식 양도소득 과세 과정의 소유 주식 비율·시가총액 등을 소득세법으로 끌어올렸다. 소유 주식 비율·시가총액을 시행령이 아니라 법률로 규정해 정부 임의대로 수정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또 이를 위해 소득세법 제94조에 단서 조항을 신설했다. 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을 10억원으로 설정하고 시행일을 내년 4월 1일로 잡았다. 이는 정부가 추진 중인 대주주 양도세 기준 강화안을 무력화하는 조항이다. 추 의원 등은 “대주주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과도한 양도세 부담과 함께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 못할 경우 야당이 마련한 법안을 바탕으로 주식 양도세 완화안을 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우선 당정은 조만간 협의를 진행해 대주주 요건에 대한 입장을 하나로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기재부와 대화를 해야 한다. 다음 주엔 결론이 날 것”이라고 전했다.
‘홍남기 해임’ 국민청원 공식 답변 내와야 하는 청와대
정부와 정치권뿐 아니라 청와대도 대주주 3억원 요건을 둘러싼 잡음을 해소할 책임이 있다. 홍 부총리 해임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지난 27일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며 청와대의 공식 답변을 기다리게 됐기 때문이다.
이 청원은 지난 5일 ‘홍남기 기재부 장관 해임을 강력히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뒤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렸다(국민일보 2020년 10월 6일자 단독기사 참조). 청원인은 “대주주 3억에 대한 폐지 또는 유예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기재부 장관의 해임을 강력히 요청드린다”며 “대주주 3억이 시행된다면 개미들의 엄청난 매도에 기관과 외인들의 배만 채울 것이며 또한 주식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어 부동산 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게 명약관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청원인과 비슷한 의견의 개인투자자들은 대주주 3억원 기준 철회를 위해 집단행동까지 불사하고 있다. 개인투자자들 모임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는 최근 여당 의원들에게 항의 이메일, 문자를 보내는 행동에 나섰다. 또 2일에는 민주당 당사 앞에서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청와대는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에 대해 담당 비서관이나 부처 장차관 등을 통해 공식 답변을 하고 있다. 청와대 답변의 내용은 당정협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홍 부총리 해임 관련 공식 입장을 홍 부총리가 직접 밝힐 가능성도 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