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가겠다는 여자들, 여성징병제 반대하는 남자들

입력 2020-11-02 00:02 수정 2020-11-02 00:02
기사와 상관없는 사진. 뉴시스

‘여성 징병제, 찬성 52.8%’.

지난 16일 KBS ‘시사기획 창’에서 성인남녀 1012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응답한 성인의 절반 이상이 여성 징병제에 찬성했다는 결과에 성별 간 반응은 확연히 갈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여성 징집이 필요한가’를 두고 남녀 간 뜨거운 설전이 벌어졌다.

설문조사 한번으로 순식간에 뜨거워진 갑론을박이 보여주듯 여성 징병제는 우리 사회에서 폭발력이 큰 화약고 같은 이슈다. 무엇보다 남녀 간 입장 차이는 합의에 이르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적어도 공론의 장에 드러난 논쟁의 양상은 그렇다. 실제로도 그럴까. 20대 남녀 20명에게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여성 징병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물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남자는 찬성, 여자는 반대 의견이 다수일 거라고 짐작했으나 답변은 정반대로 나왔다. 남성 응답자 중 7명은 여성 징병제 반대, 여성 응답자는 거꾸로 7명이 찬성 의사를 밝혔다. 찬성하는 남성과 반대하는 여성은 각각 3명이었다. 찬반의 이유도 한두가지로 모아졌다. 여자들은 ‘남성과 똑같은 의무와 권리를 갖겠다’며 여성 징집에 찬성했고, 남자들은 ‘사회경제적 비용을 고려할 때 여성징병제보다는 모병제가 적절하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다.

고작 20명의 답변이 전체 20대 남녀의 생각을 대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혐오와 분노로 점철된 인터넷 댓글로는 알 수 없었던 깊은 고민과 속내를 엿보기에는 충분했다. 특히 남자들의 경우 여성들이 지적한 군대 내 인프라 부족과 성범죄 우려 등을 앞서서 걱정했고, 여자들은 남성들이 느끼는 억울함과 박탈감에 대해 깊은 공감을 표했다. 남녀 간 입장의 차이는 확연했지만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도 그만큼이나 분명하게 보이는 결과였다.

"군대? 가야 한다면 갈게" 뜻밖에 적극적인 여성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뉴시스

여성들 상당수는 여성 징병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찬성한다”고 명쾌하게 답했다. 찬성의 이유로는 여러가지가 거론됐지만 기저에는 ‘남성이랑 동등한 대우를 받고 싶다’는 희망이 깔려 있었다.

26세 직장인(여자3)은 “여성들도 군대에 다녀와 각종 차별이나 불합리함을 없애고 남성과 똑같은 위치에서 사회생활하고 싶다”며 “남성만 징병되는 환경 때문에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더 공고화되는 것 같다. 군대에서 남성끼리 문화를 사회에 나와 기업에서도 그들만의 리그에서 수행한다. 여자들은 철저히 배제된다. 여성 징병제가 유리천장을 깨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25세 취준생(여자6)도 “군대 다녀와서 진짜 남성이랑 동등한 대우를 받고 싶다. 여성 차별을 말하면 병역 문제가 나오고 차별적인 말들이 나오는데 여자도 군대에 가면 해결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육군사관학교 자퇴 이력을 가진 26세 직장인(여자1)은 경험에 근거한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봤을 때 여성은 국방 영역에서 합리적 근거 없이 배제됐다”며 남성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이 군 문제에 있어서 차별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 징병제를 통해 이 같은 차별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특히 그는 여성과 남성이 신체적 차이가 없으며, 여성이 전투 병력으로 투입되는 데 무리가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는 “군인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찬성 입장은 동일하나 정반대 이유를 내세운 여성도 있었다. 23세 대학생(여자9)은 “성대결의 문제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성평등을 위해 여성 징병제를 추진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다만 군 인력이 부족하다면 군대에 갈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병력 부족과 휴전상황에 대한 고려, 군현대화로 인한 인력 수요의 변화 등을 지적한 목소리도 있었다.

반대 입장을 피력한 여성들은 성범죄 우려 등과 함께 사회에서 여성이 받는 차별을 지적했다. 23세 대학생(여자8)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성 범죄도 해결을 못하면서 폐쇄적인 군대 안에서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의문”이라며 “남자들이 군입대를 불공평하다고 하는데 사회에서 발생하는 남녀차별 먼저 없애면 군대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조건부 찬성의 입장을 피력한 23세 대학생(여자5)도 성범죄 우려 등 환경 문제를 지적하며 “군대에 가기 싫은 게 아니다.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개선된다면 군대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은 꽃" "굳이 여자까지" 안된다는 남성들
게티이미지뱅크

남성 응답자들은 대체로 여성 징병제에 부정적이었다. 병력이 모자란다면 모병제를 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게 여성 징병제에 반대하는 남자들의 주장이었다. 26세 취준생(남자3)은 “여성 징병제가 이슈가 되면 젠더 문제로, 남녀 갈등으로 번진다. 왜 군대 문제가 젠더갈등이 되나”라며 “남자 중에도 군대에 안맞는 사람이 있고 여성 중에도 군대랑 성향이 너무 잘맞고 군대를 가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모병제로 바꾸는게 내 가치관과 가장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27세 직장인(남자2)은 “여성 징병제는 필요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남녀평등이라는 문제에서 나온 것”이라며 “이런 감정 논리로 여성을 징병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군대가 여성을 징병해서 감당할 수 있나. 국방력이 강화되나”라고 반문했다.

27세 직장인(남자1)도 “현대 전쟁에서 과거만큼 숫자가 중요할 것 같지도 않고 차차 모병제로 전환을 하는 게 맞다”며 “남녀차별하지 말고 원하는 사람들은 군대에 입대해서 군사훈련을 받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시대착오적. 여성 위해 병영시설 개선하느니 군 현대화에 투자하라”거나 “여성 징병의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모병제가 사회적 화두인데 여성 징병제는 시대에 역행하는 사고”라는 지적도 있었다.

흥미롭게도 최연소 응답자로부터 가장 전통적인 답변이 나오기도 했다. 20세 대학생(남자10)은 “솔직히 여자도 군대 가야된다는 거 좀 억지”라며 “여성은 꽃이다. 그런 위험한 곳은 남성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SNS 댓글에도 논리적이라기보다는 ‘남자는 가는데 여자는 왜 안가냐’ 하는 식의 보상 심리에 근거한 주장이 많다”며 “우리나라가 여성 징병제를 시행할 정도의 상황도 아니고, 신체적으로나 유전적으로 남성이 징병 대상으로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여자가 군대에 가려면…해결할 문제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뉴시스

여성 징병에 찬성한 사람들에게도 걱정은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현실의 대한민국 군대가 여성 사병을 수용할 준비가 돼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군 내무반 시설 같은 인프라부터 폐쇄적인 군대 문화까지 아직 대한민국 군대는 여성을 받아들일 환경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여성징병제를 지향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낸 사람들도 있었다.

23세 대학생(여자5)은 “민간사회에서도 성범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인 마당에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조직 특성상 군대는 더 심각할 거라고 예상한다”며 “군대 및 사회의 성차별이 개선된 후에나 여성 인력을 늘릴 수 있지, 여성을 먼저 투입해서 개선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23세 대학생(남자4)은 “여자를 징병하면 (시설을) 따로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이를 효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며 여성 징병제 도입에 앞서 제반시설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5세 대학생(남자5)도 “당장 군대 내에 여자 화장실도 부족할 텐데 시설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몇 년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군대 부당해" 남녀 모두 동의하는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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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든 남자든, 찬성이든 반대든 대부분이 입을 모아 동의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현재의 군 제도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응답자들 대부분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20대의 2년을 군대에서 보내는 것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남성들은 박탈감을 토로했다. 여성 징병제에 반대한다는 27세 직장인(남자1)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짜증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27세 대학원생(남자6)은 “병영생활 개선이 이뤄진 것은 맞지만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사회와 격리되어야 하고 앞뒤로 손해보는 시간도 많아서 부당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26세 취준생(남자3)은 교환학생 시절 자신보다 세 살 어린 외국인이 대학원생인 것을 보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외국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 만난 네덜란드 친구가 나보다 3살 어린데 벌써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당시 나는 26살이었는데 아직도 대학교 3학년이었다. 군대 때문에 해외 대학원 진학 시 2~3년 차이가 나 국제무대에서 개인의 경쟁력이 뒤떨어지는 것에 불안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여성들 역시 동의했다. 23세 대학생(여자9)은 “가장 좋은 나이대에 18~22개월간 군대에 가게 되는 것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있다”며 “군 내부에서는 여전히 인권문제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런 점부터 시정되어야 한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21세 대학생(여자4)는 “(군 제도는)부당하다. 턱없이 적은 월급, 부실 시설, 인명사고 등 위험 뿐 아니라 엄격한 상명하복 군대 문화 속에서 타의로 폭력적 상황에 노출되고 고통받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5세 취준생(여자10)도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군대를 선택이 아닌 필수로 가게 된 거니까 성별을 떠나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고, 23세 취준생(여자7) 역시 “선택권이 없다는 면에서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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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결' 방식의 논의는 부적절하다
몇몇 응답자는 기자의 질문에 불편함을 표했다. 현재 여성 징병제가 논의되는 방식과 프레임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여성징병제를 도입해야 하냐는 질문 등에 ‘예·아니오’로 딱 잘라 답할 수 없다거나, 이 문제를 성 대결로 바라보는 프레임이 불편하다고 답한 사람이 절반을 넘었다. 이들은 갑작스레 불붙은 여성 징병제 논란이 병역제도 개선보다는 성별 갈등을 부추겨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말했다.

병역 문제를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대립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군대=남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군대에 가는 남성과 그외 시민들’로 나눠 논의를 해야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여자5는 “남성 중에서도 군대를 면제받는 경우가 있지 않냐”고 했고, 남자9는 “남성들 사이에서도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남성을 놀리거나 괴롭히곤 한다. 사회에서 군대 문제는 남녀가 아니라 군필과 미필을 가른다”고 지적했다.

또 응답자들은 여성징병제를 시행하기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여성 징병제가 성차별을 실질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지, 현재 병역 제도의 문제는 무엇인지 등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을 제안하기도 했다.

김남명 인턴기자
김나현 인턴기자
김수련 인턴기자
박수현 인턴기자
송다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