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9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징역 17년형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의미 있게 제시된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여러 형사법리적 판단 기준이다. ‘대통령이 될 자’의 지위는 언제부터 부여되는지, 대통령의 5년 재임 기간에 공소시효는 흐르는지 아닌지 등의 쟁점이 선명히 정리됐다. 직권남용에 대한 판단이 엄격히 이뤄져야 한다는 사법부의 기조는 이번에도 유지됐다.
대법원은 이 전 대통령이 2007년 8월 20일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시점부터 ‘대통령이 될 자’의 지위에 있었다고 최종적으로 판단했다. 이 부분은 이 전 대통령이 취임 전 삼성이나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 민간에서 지원받은 금품에 대해 사전수뢰죄를 적용할 수 있느냐의 여부를 놓고 꾸준한 쟁점이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당선되기 전에는 ‘대통령이 될 자’가 아니다”고 했고, 검찰은 “여론조사로 압도적 지지율을 받을 때에는 ‘대통령이 될 자’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 전 대통령이 이 전 회장에게서 받은 금품의 경우, 검찰이 기소한 범위는 2007년 1월부터 2011년 2월까지 건너간 약 22억6000만원이었다. 1심은 “선거와의 시간적 거리나 출마 의사, 당선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직 취임의 개연성을 판단해야 한다”며 2007년 7월부터의 금액을 문제성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은 2007년 8월 20일 한나라당 경선을 통과한 뒤부터 ‘대통령이 될 자’가 됐다고 판단했고, 뇌물액은 1심보다 4억원가량 줄었다.
재판 과정에서 논란이던 ‘대통령의 공소시효’도 정리됐다. 이 전 대통령 측은 “뇌물죄를 적용한다 하더라도 공소시효 10년이 지났다”며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날 “헌법 제84조는 공소시효의 정지에 관한 규정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불소추 특권 규정은 곧 “대통령은 재임 기간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뜻이란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직권남용죄를 점점 엄격하게 판단하는 기조를 유지했다. 이 전 대통령이 2008년 대통령실 소속 공무원과 외교부 공무원들에게 다스 관련 미국 소송을 지원토록 지시한 부분은 검찰 주장과 달리 무죄가 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통령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해야 한다는 부분, 나아가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부분 등 직권남용의 2가지 조건을 엄격히 봤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의 이 전 대통령 수사는 ‘적폐청산’으로 평가받았다. 청와대는 지난해 6월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적폐청산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검찰 내부뿐 아니라 국민의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 수사를 맡았던 검사 다수는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에도 관여했고, 현재는 대개 지방에서 근무한다. 이들은 “검사로서 할 일을 했을 뿐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다”고 했다.
허경구 이경원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