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한·미 국방부 장관이 참여하는 한·미안보협의회(SCM)의 공동성명에서 단골처럼 들어가던 ‘주한미군 유지’ 문구가 올해 12년 만에 빠졌다. 관용구처럼 들어가던 문구가 빠진 데 대해 일각에선 최근 한·미 양국이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주한미군방위비분담금협정 협상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았다.
특히 최근 서욱 국방부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주한미군의 ‘융통성’ 문제를 거론하면서 기정사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국방부가 즉각 “주한미군 감축과 관련한 어떤 논의도 없었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이 문제는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상태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일단 주한미대사 대리를 지낸 마크 내퍼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 역시 지난 28일 세종연구소와 헤리티지 재단이 공동주최한 ‘한·미동맹의 전망과 과제’ 화상회의에서 ‘이 문구(주한미군 유지)가 빠진 것이 방위비 협상에서 한국을 위협하기 위한 것이냐’는 취지의 질문에 “위협이나 한국의 팔을 비틀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아니라 최대한 현명하게 미군을 배치하는 방법에 대한 미 국방부의 세계적 평가에 초점이 맞춰진 메시지”라며 “(주한미군 유지) 문장이 빠진 것이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받았고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면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린 제52차 한·미 SCM에서 미측은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을 명분으로 ‘주한미군 유지’ 문구를 빼자고 제안했다. 주한미군만 붙박이로 두는 것은 전략적 융통성이란 기조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주한미군은 계속 유지한다는 뜻을 우리 측에 구두로 확인해줬다.
우리 전문가들 역시 SCM 공동성명에 ‘주한미군 유지’ 문구가 빠졌다고 해서 이를 바로 주한미군 감축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29일 “(문구 삭제는) 중국 견제를 위해 아시아 주둔 미군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라며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도 “미·중 갈등 때문에라도 주한미군 주둔은 중요하다는 게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의 생각”이라며 “반드시 (병력)숫자를 채우지 않더라도 신속 투사 능력이 강화되면 대비 태세 능력도 증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추진 중인 해군 전력계획과 연관해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은 군의 해상배치를 강화하며 중국 견제력을 키우려는 태세인데, 현재 육군 중심으로 운용되는 주한미군도 이 방침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평택에 몰려있는 주한미군이 한반도 안팎으로 분산될 수 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미국이 제주도 해군기지를 이용하거나 별도 도서에 미사일 기지 또는 레이더망을 설치하길 희망하는 것 같다”며 “이를 우리 정부가 수용한다면 미국이 한국 내 여러 곳에 군대를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조정 과정에서 미국이 주한미군 병력 일부를 필리핀이나 남중국해로 옮기는 방안도 나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주한미군 수가 줄어들게 된다. 대북 대응도 중요하지만 중국에 우선적으로 대항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선 한반도에 너무 많은 병력을 집중시키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설명이다.
조 위원은 “이런 전체적인 조정 과정에서 ‘주한미군 유지’를 못 박아 버리면 (미국으로선) 군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 작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 (주한미군 유지 문구 삭제가) 감축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진단했다.
김영선 손재호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