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국가정보원(국정원) 개혁을 위한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했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27일 비공개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해 국정원법에 대한 의견 수렴 작업을 거쳤다. 국정원의 수사권 이관, 새로운 안보개념을 규정하는 신안보, 국정원의 사이버 정보 수집이 향후 여야 협상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비공개 간담회에는 전해철 정보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보위 간사인 김병기 의원, 국민의힘 정보위 간사인 하태경 의원 등 여야 정보위 위원들이 참석했다. 석재왕 건국대 안보재난·안전융합연구소장과 이재교 세종대 법학부 교수, 장유식 법무법인 동서남북 변호사, 황윤덕 국가안보통일연구원 원장이 전문가 자격으로 자리했다.
비공개 간담회에서는 국정원의 권한 통제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질의가 이어졌다. 정보위 관계자는 28일 “국정원을 통제해야 한다는 큰 방향에서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국정원의 권한은 어디까지 한정해야 할지 등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대공수사권 이관 문제에서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고, 신안보 규정 문제에서도 ‘명시해야 한다’ ‘넣지 않아도 된다’ 등 의견이 다양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조직 성격상 투명화는 어렵다”고 한 전문가가 발언하자 “지금까지 국정원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며 한 정보위원이 반박하며 토론이 격화되기도 했다.
핵심은 ‘대공수사권 이관’
현재까지 여야는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민간인 사찰, 시민단체 와해 공작 등 드러난 폐해를 막기 위해 과도한 권한을 통제해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대를 이뤘다. 하태경 의원은 지난 23일 국정원의 국내 정치개입 차단, 국가배후 해킹에 대한 국정원의 대응을 명문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여당에서는 김병기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정원법 개정안을 검토해 왔다. 국정원의 명칭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변경하고 직무 범위에서 국내 정보 업무와 대공 수사를 삭제하며, 국정원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다만 국정원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을 두고는 여전히 이견이 크다. 핵심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이관 문제다. 대공수사권은 간첩 등 국가보안법 위반 범죄에 대한 수사 권한을 말한다. 여당은 국정원이 대공수사권을 빌미로 민간인 사찰, 정치개입, 간첩 조작 등의 폐해를 낳았기에 국정원의 업무 범위에서 대공수사권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야당은 경찰이 역량을 완전히 갖추지 않은 점 등의 안보공백을 이유로 대공수사권 이관 자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 의원이 발의한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공수사권 존치’가 담긴 이유다. 국민의힘 소속 정보위 위원은 “경찰로 이관하는 게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며 “대공수사에 막대한 차질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당도 대공수사에 공백이 있으면 안된다는데 동의하는 만큼 논의를 더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야당을 설득하기 위해 대공수사권을 이관하되 국정원에 조사권을 남겨주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그러나 이 안에 대해서도 민주당 소속 정보위원 간 의견 차가 있다. 일반적으로 조사권은 감청·금융정보 조회 등 혐의자에 대한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국정원에 조사권을 남겨둔다면 대공 용의점과 관련해 강제수사를 하지 못하더라도 개인정보 수집 정도는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 민주당 정보위원은 “(여당의) 아주 강경한 쪽은 ‘조사권을 주면 국정원에 수사권이 사실상 남아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부터 ‘조사권 정도는 줘야 한다’ 등 다양한 의견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야당 의원들도 ‘대공수사권은 넘길 수 없다’는 의견 부터 ‘넘기면 확실한 조사권을 확보해야 한다’ 등의 의견이 혼재한다”고 말했다.
여야 정보위원 사이에서는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안, 대공수사권을 경찰과 독립된 외청으로 넘기는 안 등도 거론된다. 정보위 관계자는 “수사권 이관에 대한 여야의 의견이 물과 기름은 아니다”며 “이관을 하면 조사권의 규정과 권한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도 다양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신안보’ ‘사이버 정보 수집’도 변수
새로운 안보개념을 규정하는 신안보에 대한 논의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신안보란 안보의 개념을 단순한 남북간 대결이나 군사적 충돌이 아닌 코로나19 등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넓힌 개념이다. 범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국정원의 업무 범위가 현격히 넓어질수도, 급격히 좁아질 수도 있다. 정보위 관계자는 “신안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여야 의원들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신안보를 하더라도 반드시 열거주의로 범위를 좁혀서 해야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사이버 정보 수집도 마찬가지이다. 사이버 문제의 경우 대내외적으로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사안이다. 국정원의 사이버 정보 수집을 어느 범위까지 허용하느냐에 따라 국정원의 사이버 대응 역량이 달라질 수 있다. 이 관계자는 “사이버 정보 수집을 국가기밀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걸로 하면 너무 좁아지고, 정보통신법으로 적용할 경우 범위가 너무 넓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우선은 공공단체를 대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국정원법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항인만큼 야당과 최대한 합의처리 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합의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고, 협상 시한은 내년 2월이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다. 여야는 내주부터 정보위 소위원회를 열어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박재현 이상헌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