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Fn터치] ‘평화로운 정권교체’라니… 시험대 오른 미국 민주주의와 월가…

입력 2020-10-28 16:11 수정 2020-10-28 16:14
JP모건, BofA 등 월가 금융수장도 우려 표명
연방 대법원 논란 거리 ‘우편투표’ 트럼프 손 들어줘
최악의 경우 하원에서 대통령 선출 가능성



“바이든이 당선될 확률은 65%다.”
미국의 자산운용사 웰링턴 매니지먼트의 마이클 메데이로스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27일(현지시간) 뉴욕 주재 한국 금융기관의 모임인 국제금융협의체의 온라인 회의에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이같이 예상했다.

그러면서 상·하원 양원도 모두 민주당이 가져가는 ‘3관왕’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대규모 부양책을 추진한다면 조 바이든 후보의 조세 인상과 규제 강화 정책을 상쇄시키면서 금융시장에도 긍정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처럼 바이든의 승기가 굳어질수록 미국 대선결과에 대한 불안감은 오히려 증폭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뉴욕 월가와 재계는 물론 학계에서 평화적이고 공정한 선거를 염원하는 성명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은 미국의 민주주의 후퇴에 따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월가도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라 있음을 우려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28일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 상공회의소,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등 8개 재계 단체가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성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 등으로 선거결과가 당일 확정되지 못하고 몇주동안 표류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평화롭고 공정한 선거’를 요구했다.

미국내 비즈니스스쿨 학자 650여명은 트럼프가 지도자 자격이 없고 민주주주의 체제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서한을 재계에 발송했다.

JP모건 체이스의 재이미 디먼 회장과 뱅크오프 아메리카(BofA) 은행의 앤 피우케인 CEO 등 월가의 금융기관 수장들도 직원과 고객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1980~90년대 군부독재를 경험한 한국이나 중남미 등에서 볼 수 있던 광경이 전세계에 민주주의 전도사로 자처해 온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려가 확산되는 것은 논란의 중심에 우편투표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복투표, 서명 불일치에 따른 무효표와 마감시한을 넘긴 투표 등이 문제가 됐는데, 대법원은 27일 경합주로 알려진 위스콘신주에 대해 트럼프에 더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그가 임명한 브렛 카버너 대법원 판사는 위스콘신주의 우편투표 연장 신청에 대해 선거 당일 도착분에 대해서만 인정하겠다고 판시했다. 선거 운동 단체들은 이 판결이 향후 트럼프의 대선 결과 불복 소송이 현실화될 경우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우편투표를 제외한 투표수만 가지고 트럼프가 승리할 가능성이다. 2016년 대선에서 23.6%였던 우편투표가 올해는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27일 현재 36%를 넘었다.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등 6개 경합주의 조사결과를 보면 바이든 지지자가 약 6대 4 비율로 앞서고 있다.

표 차이가 크지 않으면 선거인단 수가 많이 걸려 있는 경합주의 선거인단 확정이 늦어질 수 있다. 이럴 경우 트럼프가 바이든에 10%포인트나 뒤져 있어도 정작 투표 당일 개표상황에서는 트럼프가 승리하는 것으로 나올 확률이 크고, 우편투표 개표가 늘어남에 따라 갈수록 바이든이 우세를 점해가는 이른바 ‘블루 시프트’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트럼프는 대선 당일 승리선언을 하고 이후 개표되는 표는 무효라며 대법원 소송을 강행하려 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대선 이후 지명 요구를 거부하고 에이미 코니 배럿 연방대법관을 지명을 강행해 6대3의 비율로 보수성향 대법관을 늘렸기 때문이다.



<자료: 블룸버그, 한화투자증권>
이럴 경우 미국 증시에 20조원 이상 투자하고 있는 ‘서학개미’들은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유진투자증권의 허재환 연구원은 “민주당에 유리할 수 있는 우편투표 결과를 최대한 반영시키지 않아 선거인단 최종확정일인 12월 8일까지 선거인단이 정해지지 않을 수 있다”면서 “내년 하원 개원일인 1월3일까지도 당선자가 가려지지 않는 막장 드라마가 펼쳐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원래 대선 투표 결과를 가지고 12월 14일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지만 어느 후보도 선거인단 270명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내년 1월 3일 개원하는 하원에서 투표하게 된다. 현재 하원의원은 총 435명으로 민주당이 다수당이지만 50개주에서 하원 대표가 주마다 1명씩만 나와 투표할 수 있다.

각주의 과반 분포로 보면 11월 3일 선거에서 현재의 판세를 유지한다고 가정할 경우 공화당이 26개주로 22명에 불과한 민주당을 앞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수도 있다. 어느 당도 26표 이상을 획득하지 못할 경우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대통령이 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한다.

이 여파로 경기침체를 막기위해 절실한 부양책에 대한 기대가 현저히 떨어지면서 미 증시는 변동성을 확대할 수 있다. 재검표 소송이 벌어진 2000년 대선 당시 S&P 500지수는 앨 고어 후보가 최종 승복하기 까지 11%나 떨어졌다. 미국 달러 약세 기대가 약해지고 금리 급락도 불가피 하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선거 결과를 예상해서 투자 포트폴리오를 미리 조정해 놓는 것보다는 선거 이후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위험 관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