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법관인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후보자가 배우자의 부동산 투기 논란과 다른 후보자의 서면 답변서를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 넣는 이른바 답변서 복붙 논란에도 사상 첫 여성 중앙선관위원장이 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27일 채택했다. 앞서 민주당은 ‘적격’ 국민의힘은 ‘부적격’ 의견을 각각 병기한 청문보고서를 작성했다. 노 후보자는 향후 대법원 의결 절차를 거친 뒤 선관위원으로 최종 임명된다.
행안위는 보고서에서 “후보자는 법관의 기본적 책무인 사회적 약자 보호를 충실히 수행해 왔다”며 “최초 여성 중앙선관위원장으로 임명된다면 위원회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여성, 소수자를 위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배우자의 부동산 매각으로 막대한 시세 차익을 올려 청렴성에 문제가 있는 점 등을 이유로 부적합하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현직 대법관인 노 후보자는 선관위원 가운데 대법관을 중앙선관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관례에 따라 사상 첫 여성 중앙선관위원장이 될 전망이다.
노 후보자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배우자의 부동산 투기와 서면 답변서 복붙 등이 주요 쟁점이 됐다. 박영수 국민의힘 의원은 노 후보자의 남편 이모씨가 지난 2016년 7월 경기도 청평에 4층짜리 건물(1456㎡)과 대지를 임차했다가 이후 건물주에게 소유권 이전 소송을 제기한 끝에 부동산을 “헐값 매수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임대차 계약을 맺을 당시 요양병원에 필요한 엘리베이터, 소방시설 등 공사를 요구하고 이를 특약사항에도 담았지만 공사가 제때 진행되지 않자 “2017년 1월 30일까지 공사 등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임대인은 부동산을 양도한다”는 내용의 별도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후에도 공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씨는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이씨는 담보대출(7억6000만원)을 끼고 보증금(5억원)만 매입 대금으로 전환하는 조건으로 이 건물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부동산 소유권 이전이 완료되고 이씨는 소송을 취하했다.
이에 대해 노 후보자는 “나중에 알고 난 다음에 사실 (남편을) 타박을 좀 했는데, 임대인 쪽에서 자금 사정을 호소하는 바람에 보증금을 선지급했다고 한다. 송구하다”면서 “임대인이 수리를 안 해주면 전세를 빼는 게 상식인 것에 대해 동의한다”고 밝혔다.
한의학 박사인 이씨는 여기에 요양병원을 열었다. 노 후보자도 금융 기관에서 2억3000여만원을 대출받으면서 자금을 보탰다. 그러나 이씨는 이듬해 4월 청평 인근에 다른 건물(2997㎡)을 보증금 3억원, 월세 2300만원에 임차하고 두 달 뒤 요양병원을 이 건물로 확장 이전했다. 1년 만에 요양병원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기존 건물은 22억원에 매각했다. 시세 차익을 9억4000여만원 거둔 셈이다.
이에 대해 노 후보자는 “투기나 투자 목적이 전혀 아니었다”며 “단순 차액으로 보면 9억여원이지만 여러 사정을 감안하면 거액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노 후보자는 매입한 경기 청평의 건물에 많은 수리비와 시설‧설비 비용, 운영 자금이 투입됐다고 했다. 노 후보자는 1년 만에 요양병원을 다른 건물로 옮긴 이유에 대해 “기존 매수한 건물에 소음 문제가 개선이 되지 않아 다른 곳으로 옮겨 요양병원을 다시 세웠다”고 답했다.
이날 인사청문회에서는 노 후보자가 제출한 서면 답변서가 다른 선관위원 후보자가 앞서 제출한 답변서와 똑같아 논란이 됐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답변서를 분석한 결과 노 후보자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정책 질의에 서면 답변한 내용 중 63개가 지난달 조성대 선관위원 후보자가 제출한 답변과 토씨까지 똑같았다.
특히 선관위의 중립성·공정성에 대한 소신, 위성정당에 대한 평가, 장애인·교사·청소년의 정치 참여에 대한 견해 등 선관위원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 소신에 대한 답변도 그대로 베꼈다는 게 박 의원의 주장이다.
이를 테면 노 후보자는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적 의사 표현에 대해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는 동시에 정치 활동의 자유를 향유할 기본권 주체의 지위도 가지고 있다…”고 답했는데, 이는 조 후보자의 답변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박 의원은 “본인의 자질을 검증하는 청문회에서 다른 후보의 가치관과 사상, 선관위원으로서 기본적 소신마저 베낀 것은 선관위원으로서 자격이 없다”며 이와 관련한 진상조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 후보자는 “선관위 직원들의 도움을 받았으나 최종적으로 제가 모두 보고 컨펌(확인)해 내보냈다”며 “내용을 모두 읽어 보고 소신이나 평소 생각에 부합해 답변드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