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를 향해 가는 올 시즌 K리그 최고 수문장의 영예를 누가 차지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나 올해는 경쟁 구도가 치열하다. 특수 포지션인 골키퍼의 특성상 자리는 올해도 예외없이 단 하나뿐이다. 지난해까지 3연속 주인공이었던 울산 현대 조현우(29)가 건재하고 승부사적 기질을 보여준 포항 스틸러스의 강현무(25), 디펜딩챔피언다운 안정감이 돋보인 전북 현대의 송범근(23)에 부활한 상주 상무 이창근(27)까지 가세했다. 묘하게도 이번 베스트일레븐 골키퍼 후보 명단은 2018년과 똑같다.
하나원큐 K리그1 2020 베스트일레븐 GK 후보 및 주요통계
소속팀 | 라운드B11 | 무실점 | 출장시간 | 평균실점 | 선방/피유효슈팅 | |
강현무 | 포항 | 7 | 8 | 2492 | 1.31 | 0.558 |
송범근 | 전북 | 4 | 10 | 2497 | 0.81 | 0.524 |
조현우 | 울산 | 2 | 10 | 2486 | 0.88 | 0.534 |
이창근 | 상주 | 0 | 8 | 1637 | 1.29 | 0.565 |
‘핸우가 누꼬’라고? 내 조핸우다!
수년째 리그 최고의 수문장으로 꼽혀온 조현우가 올해 보여준 퍼포먼스는 외려 한 발 더 발전한 모습이었다. 약점으로 지적받던 빌드업이 눈에 띄게 개선되면서 우승후보 울산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 본인 역시 지난 8일 대표팀 소집 중 기자회견에서 “울산에 와서 (빌드업) 훈련을 많이 했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올 시즌 조현우가 자신의 진영 3분의 1 아래 지점에서 성공시킨 패스는 656개로 골키퍼 중 전체 1위다. 화끈했던 울산의 공격 축구에 조현우의 지분도 상당한 셈이다. 조현우의 최후방 빌드업 덕에 울산은 상대 팀이 추격을 위해 달려들더라도 안정적으로 공을 전방에 뿌릴 수 있었다.
예전부터 가장 큰 장점으로 꼽혀온 선방능력도 충분히 보여줬다. 올 시즌 조현우는 베스트일레븐 후보에 오른 골키퍼 4인 중 가장 많은 288개, 경기당 11.08개에 달하는 슈팅을 상대하면서도 선방 수치에서 평균 3.00개로 선두에 올랐다.
그는 올 시즌 친정팀 대구 FC와의 경기에서도 돋보이는 선방을 펼쳤다. 특히 지난 9월 경기에서는 상대 유효슈팅 9개 중 6개를 막아내며 팀을 패배에서 구해냈다. 리그 최고의 GK를 떠나보내고서도 아픈 마음에 “핸우가 누꼬”라며 애써 외면했던 대구 팬들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는 활약이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보여줬듯 큰 경기에 강한 모습도 여전하다. 결국 패배로 끝나긴 했지만 리그 우승 향방에 결정적이었던 지난 전북과의 홈경기에서는 구스타보의 정면으로 낮게 깔아 찬 페널티킥을 넘어지면서도 다리로 막아냈다. ‘역시 조현우’라는 탄성이 나올만한 장면이었다.
강팀에 어울리는 GK 송붐, ‘이번에야말로’
‘송붐’ 송범근은 여태껏 상복이 없었다. 2018년 데뷔부터 챔피언 전북의 주전을 꿰차 첫해 30경기에서 19경기 무실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냈지만 그에게 주어진 상은 없었다. 지난해에도 그는 선방 순위와 유효슈팅 대비 선방에서 가장 앞서면서 리그 최고의 골키퍼다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두 해 연속 베스트일레븐과 영플레이어상(신인상) 후보에 모두 올랐음에도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매해 정상급 플레이를 했지만 전북이 워낙 강팀이란 점 때문에 평가절하를 당한 면도 있다. 이번에도 개인상을 놓친다면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송범근은 지난 7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데뷔 시즌에 신인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줬다고 생각한다”면서 “올 시즌 개인적으로는 베스트일레븐에 들고 싶다”고 야심을 보이기도 했다.
올 시즌 그는 후보 중 가장 슈팅을 적게 허용하고 골도 적게 먹은 골키퍼였다. 26라운드까지 21실점, 경기당 실점이 0.81로 4명 후보 중 가장 낮다. 전북의 수비가 워낙 탄탄하기도 하지만 최후방 송범근의 조율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성적이다. 뚜렷한 수치로 드러나지 않을 뿐 팀의 막내급인 그가 쟁쟁한 이름의 형들과 단단한 수비진을 구축한 결과다.
송범근은 앞서 국민일보에도 “에드빈 판데사르가 말했듯 가장 좋은 골키퍼란 자신에게 공이 오지 못하게 하는 골키퍼”라며 자신의 철학을 드러낸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애초에 공이 오기 전에 어떻게 하면 잘 차단할 수 있을까 하고 수비에 직접 지시하고 조정하려 한다. 뒤에서 컨트롤을 최대한 많이 가져가려 한다”고 말했다.
여태 베스트일레븐 골키퍼를 꼽을 때마다 앞을 가로막은 조현우도 송범근을 의식하는 듯한 발언을 한 적 있다. 조현우는 최근 열린 성인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경기를 앞두고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을 받자 “골키퍼끼리만의 신경전이 있다”면서 “리그에서는 (송범근의 소속팀) 전북을 이기지 못했지만 대표팀에서는 지지 않게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실력에 재미와 감동까지…‘유잼 GK’ 강현무
이전부터도 강현무의 플레이는 특별했다. 데뷔전 헤딩 클리어링부터 시작해 페널티킥 때마다 나오는 ‘액션’, 가끔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과감한 전진과 튀는 행동으로 즐거움을 주는 그에게 팬들은 ‘잼현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입대까지 미룬 채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매김한 올해에도 그의 활약은 계속됐다.
강현무는 올 시즌 26라운드 전 경기에 나서 총 7번 라운드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됐다. 4분의 1이 넘는 라운드에서 그가 모든 팀 골키퍼 중 가장 빛났다는 이야기다.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만큼 그는 매 경기 하이라이트를 양산해내며 유독 눈에 띄었다. 포항은 시즌 초 주전들의 군입대 등으로 수비가 다소 흔들리는가 했지만 고비마다 골문을 지킨 강현무 덕에 반전할 수 있었다.
경기에서 보여주는 ‘임팩트’ 못지않게 강현무는 실속도 리그 최상위권이다. 그의 올 시즌 경기당 평균 실점은 1.31점으로 경쟁자들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평균 선방이 2.77개로 조현우에 이어 경쟁자 중 2위다. 유효슈팅 대비 선방 비율을 따져도 0.558로 2위다. 한때 약점으로 평가받던 공중볼 처리도 올해는 29회로 전체 1위를 차지해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가히 재미와 실력 모두를 갖췄다고 할만하다.
결과와 상관없이, 그의 튀는 행동은 항상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지난 FA컵 준결승에서 포항의 맞수 울산과 승부차기에 돌입했을 당시 그는 상대 실축 때마다 격렬한 세리머니로 감정을 드러냈다. 자신이 직접 키커로 나서 ‘총총’거리는 도움닫기를 하다 조현우의 선방에 막혔을 때조차 그를 욕하는 팬은 드물었다. 그만큼 강현무의 존재는 그 자체로 흥행거리다.
올 시즌 유독 강현무의 활약이 두드러졌기에 그를 대표팀에 발탁해야 한다는 여론도 많았다. 그러나 최근 열렸던 성인대표팀과 23세 대표팀 사이 ‘스페셜 매치’ 소집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이후 강현무는 화풀이라도 하듯 지난 3일 디펜딩챔피언 전북과의 경기에서 눈부신 선방으로 포항의 1대 0 승리를 이끌어냈다.
‘반전 성공’ 이창근…‘나 없는 곳 NO.1 다툼 마라’
이창근에게 올 시즌은 재도약의 해였다. 시즌 초 황병근에게 밀려 출장하지 못했지만 이후 서서히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제주 유나이티드 시절 보여줬던 리그 베스트급 활약을 되살렸다. 출장 수는 17경기로 경쟁자들보다 확연히 적지만 이중 무실점 경기가 절반 가까운 8개에 달한다. 이겨야 할 경기에서 쓸데없는 실점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가 최고의 기량을 보였던 2018년에 이어 베스트일레븐 후보 명단에 복귀한 것도 이런 모습이 반영된 결과다. 이창근의 경기당 평균 유효슈팅 허용 개수는 4.47개로 송범근에 이어 후보 중 두 번째로 낮다. 주목할 건 유효슈팅 당 선방율이 0.565으로 후보 중 가장 높다는 점이다. 위험한 슈팅을 적게 내주고 또 잘 막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다. 지난해의 기복 있던 경기력을 만회할만한 활약이었다.
이외 다른 지표에서도 이창근은 앞서 언급한 후보 3명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파울루 벤투 대표팀 감독이 앞선 ‘스페셜 매치’에서 조현우와 구성윤에 이어 그를 불러들인 것도 기량 면에서 여전한 신임을 받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다만 출장시간이 1637분으로 시즌 전 경기에 출장한 다른 후보들에 비해 800분 이상 부족한 편이라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