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을 앞두고 러시아가 ‘중·러 군사동맹’을 띄우자 중국이 반색하고 나섰다. 중국과 러시아가 실제로 군사동맹을 맺을 가능성은 낮지만 미·중 갈등이 장기화되고 미·러 핵무기 감축 신경전이 이어지는 와중에 나온 것이라 관심이 쏠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러시아 전문가 모임인 ‘발다이 클럽’이 주최한 화상 연례회의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군사동맹을 맺을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그것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이론상으로는 꽤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양국은 이미 군사적으로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발전하는지 보게 될 것이다. 그걸(군사동맹) 배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1950년 구소련과 중국이 우호조약을 체결한 이후 러시아 지도자가 중국과의 군사동맹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트스(SCMP)가 26일 보도했다.
중국도 즉각 호응했다.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정례브리핑에서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양국의 특별하고 높은 수준의 유대 관계를 보여준다”며 “중·러의 전통적 우호 관계에는 한계가 없고 협력 확대에 성역은 없다”고 말했다.
중·러 군사동맹 체결설이 처음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일본 교도통신은 지난해 10월 러시아 국립고등경제학원 교수를 인용해 중·러 지도부가 군사동맹 체결 방침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미국은 러시아와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파기하고 아시아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검토하던 상황이었다. 중국은 이에 맞서 미사일 공격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축했고 러시아가 이를 지원했다. 이처럼 중·러의 전략적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동맹 체결 가능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당시 중·러는 공개적으로 부인했다. 러시아는 “양국 관계는 세계 무대에서 서로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 신뢰할만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했고, 중국도 “중·러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동맹을 맺지 않고 대항하지 않으며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중·러는 그간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을 진행하는 등 안보 협력을 강조해왔지만 ‘상호 방위’가 적용되는 군사동맹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중·러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리리판 상하이사회과학원 교수는 SCMP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동맹을 거론한 것 자체가 중·러간 분명한 연대를 보여주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리 교수는 특히 푸틴 대통령의 제안은 미국과 진행 중인 ‘신전략무기 감축 협정’(뉴스타트·New START)을 겨냥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협정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2010년 4월 체결했다. 미·러 양국이 실전 배치 핵탄두 수를 각각 1550개 이하로, 이를 운반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전략폭격기 수를 700기 이하로 줄이는 것이 골자다. 이 협정은 내년 2월 만료된다.
당초 러시아는 이 협정을 조건 없이 1년 연장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협정을 1년 연장하고 그 기간에 모든 전술·전략 핵무기 배치를 동결할 것을 주장해 협상에 진전이 없었다. 이후 러시아가 핵탄두 수 동결 조건으로 협정 1년 연장안을 수정 제안하면서 합의에 근접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