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착] 이병철 창업주와 함께 찍은 이건희 회장 사진

입력 2020-10-26 07:02 수정 2020-10-26 09:49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만이다.

이 회장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의 부친이자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회장이 이목을 끌고 있다. 특히 이병철 회장이 막내 아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한 이유가 재조명되고 있다.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만이다. 사진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오른쪽)와 유년시절 이건희 회장. 연합뉴스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만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사진은 1976년 삼성그룹 전산실 개장식에서 설비를 둘러보는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 연합뉴스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만이다. 사진은 장충동 자택에서 촬영한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고 이인희 전 한솔그룹 고문, 고 이건희 회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모습. 연합뉴스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만이다. 사진은 1982년 이병철 회장 보스턴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후 리셉션에서의 모습. 연합뉴스

이건희 회장은 1942년 대구에서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 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병철 회장이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청과와 건어물 무역회사인 삼성상회를 경영하던 시절이었다. 경남 의령 친가에 보내져 할머니 손에서 큰 이건희 회장은 47년 상경해 학교에 다녔고 53년 선진국을 배우라는 부친의 엄명에 따라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3남인 이 회장은 애초 우선 경영 승계대상이 아니었다고 고백했었다. 이병철 회장은 “처음에는 주위의 권고도 있고 본인의 희망도 있어 장남인 맹희에게 그룹 일부의 경영을 맡겨 봤지만 6개월도 채 못돼 맡겼던 기업체는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며 “본인이 자청해 물러났다”고 했다.

장남인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사카린 밀수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66년 경영에서 물러났다. 이맹희 명예회장은 부친으로부터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차남인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이 승계될 수 있었지만 청와대에 삼성과 부친의 비리를 고발하는 탄원서를 내면서 눈 밖에 났다.

이병철 회장은 차남에 대해 “그룹 산하의 많은 사람을 통솔하고 복잡한 대조직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알맞은 회사를 건전하게 경영하고 싶다고 희망해 본인의 희망을 들어주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병철 회장은 장남과 차남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막내인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수업을 시켰다.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에 “건희에게는 와세다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일 때 중앙매스컴을 맡아 인간의 보람을 찾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그 길이 가장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며 “건희에게는 고생스러운 기업 경영을 맡기는 것보다 매스컴을 생각했다”고 회고했었다.

어린 시절 영화 감상과 애완견 기르기를 좋아했던 이건희 회장의 적성을 고려해 이병철 회장은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이 주축이었던 ‘중앙매스컴’을 맡기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큰아들과 둘째 아들이 후계구도에서 밀려나면서 자연스럽게 셋째 아들인 이 회장을 후계자로 삼아야 했다.

이병철 회장은 “건희가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유학 후 귀국을 하고 보니 삼성그룹의 전체 경영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룹 경영의 일선에 차츰 관여하게 됐다”며 “본인의 취미와 의향이 기업 경영에 있어 열심히 참여하여 공부하는 것이 보였다”고 회상했다.

78년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 회장은 삼성의 해외사업추진위원장을 맡아 유공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쓰라린 실패를 맛봐야 했다. 87년 이병철 회장이 별세한 뒤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1993년 ‘신경영 선언’을 통해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후 삼성그룹은 27년간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은 후계구도를 두고 경쟁했던 형 이맹희 명예회장과는 그룹 경영에서 물러난 73년 이후로도 별다른 교류를 하지 않았다. 이맹희 명예회장은 2015년 8월 향년 84세로 중국에서 폐암 등 지병으로 사망했다. 그때까지 두 사람은 상속분 반환 소송으로 불화를 겪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