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인내 2.0’냐 ‘보텀업’이냐…美대선 예의주시하는 정부

입력 2020-10-26 08:00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22일(현지시간) 테네시주 내슈빌의 벨몬트 대학에서 열린 대선후보 마지막 TV 토론회에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대선이 사전투표를 통해 본격 레이스를 시작하면서 정부도 대비책 마련에 들어갔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로의 정권교체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에서 정부는 특히 한국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대북, 대중 정책에 생길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대선 이후 미국을 방문하는 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26일 알려졌다.

‘전략적 인내’ 재연인가, 4년만의 수정인가
바이든은 민주당 후보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부통령을 역임하며 ‘전략적 인내’라는 대북정책을 추진했다. 정권 초기 북한 지도자와 조건 없이 만나겠다던 오바마는 북한의 계속된 핵실험으로 인해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을 수정했다. 제재를 못 버틴 북한이 대화에 나서든가 스스로 붕괴하게끔 한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오바마의 전략은 미국 안에서도 실패한 정책이란 평가가 있다. 북한에 핵, 미사일 능력을 개발하는 시간만 벌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당초 바이든이 전략적 인내를 계승한 ‘전략적 인내 2.0’을 펼칠 것이란 관측이 있었지만 최근 정부 안팎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23일 국정감사에서 “(바이든이) 동맹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동맹의 입장을 많이 존중한다고 한다”며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와 얼마나 긴밀하게 소통하고 발빠르게 움직이느냐도 (미 대북정책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도 기자들과 만나 “바이든이 오바마와 똑같이 갈 것으로 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략적 인내 2.0이 쉽지 않은 데엔 북한의 군사력을 배경으로 꼽는 견해도 있다. 이수훈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2020 미 대선과 그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 전망’ 보고서에서 “(오바마 때와 달리) 북한이 미 본토를 직접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전략적 인내는 더 이상 사용가능한 카드가 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자국보호 차원에서라도 미국이 북한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란 얘기다. 북한은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워싱턴과 뉴욕 동시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했다.

‘톱다운’ 지속이냐, ‘보텀업’ 전환이냐
문제는 바이든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우선순위와 추진 방식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관계 우선순위에서 북한은 중국, 이란에도 밀린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미국이 (비핵화 상응조치 등의) 조건을 낮추면서까지 북한과 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대통령 결정 중심의 ‘톱다운’ 방식을 주로 쓴 트럼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두 차례나 직접 만난 것과 달리 실무협상 중심의 ‘보텀업’ 방식을 선호하는 바이든 행정부에선 이른바 ‘보여주기식’ 정상회담은 없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북·미 모두 수용 가능한 비핵화 목표를 재설정 해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되는 이유다.

북한이 미 대선 이후 군사적 도발을 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것도 우선순위 때문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당내 교체가 아닌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의 교체여서 권력이양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고, 코로나19로 인해 미국 내부 경제 문제도 만만치 않아 북한으로선 도발이라도 해 자신들의 이슈를 띄워야 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대중 견제는 유지, 방식은 바뀔 듯
대중 견제의 경우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기조 자체가 달라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국제사회 규범이나 다자주의 등을 내세워 대중 압박 동참을 요청할 것이어서 막무가내식인 트럼프 때보다 거절할 명분이 크지 않다는 게 우려되는 지점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대표적인 대중 견제 정책인 쿼드와 클린네트워크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는 유효할 전망이다.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하라는 요구에 대해 정부는 “민간기업에 개입할 수 없다”는 논리로 버티고 있지만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클린네트워크 외에) 앞으로 미·중 간 선택해야 할 이슈가 상당히 많이 생길 것”으로 봤다.

경제, 군사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중국을 적대시하는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은 부분적으로 중국과 협력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트럼프는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했지만 바이든은 “(기후변화 문제는) 중국의 도움 없이 이뤄질 수 없다”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내각을 구성하고 정책을 검토하는 데만 최소 반년은 걸려 우리 정부 입장에선 트럼프 재선보다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 또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김영선 손재호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