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았다’는 평가는 담담하게 듣고 있습니다. 좋은 결과를 내면 운이 좋다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고 포수의 도움이 컸다는 말도 들을 수 있습니다. 다만 운도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위해서 열심히 훈련했고 그 자리에 섰습니다. 노력했으니까 운도 따른 것입니다. 운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다고 생각합니다. 운이 따르지 않은 날이 올 텐데, 그땐 실력으로 극복하고 싶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우여곡절 많은 2020 시즌을 보낸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1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김광현은 23일 서울시 영등포구 켄싱턴호텔에서 귀국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상적으로 짧은 시즌을 치렀고 뛰어난 결과를 내지도 않았으나 응원해준 팬들에게 인사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7일 귀국한 김광현은 방역 수칙에 따라 2주 동안 자가 격리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자가 격리 끝나고 하겠다”고 말했던 그가 귀국 후 처음으로 입을 연 자리였다. 김광현은 “깔끔하게 인사 하고 싶어서 자가 격리 끝나자마자 미용실에 갔다”며 밝게 웃었다. 그의 옆에는 세인트루이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등이 나란히 자리했다.
올해 시즌은 김광현에게 색다른 경험의 연속이었다. 목표로 삼던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했으나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줄줄이 이어졌다. 올해 초부터 확산한 코로나19 여파로 스프링캠프가 폐쇄되고 메이저리그 개막이 무기한 연기됐다.
지난 7월 상황이 나아지자마자 김광현의 기량은 빛을 봤다. 그달 25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개막전에서 마무리 투수로 등판했는데, 1이닝 2피안타 2실점(1자책)으로 세이브를 거두면서 우수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은 다시 악화했다. 세인트루이스 구단 내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7월 31일부터 8월 15일까지 선수단 전체가 이동 제한 명령을 받았다. 경기장에 나갈 수 없었고, 연습도 제한된 공간에서만 가능했다. 김광현은 “공원이 폐쇄됐었지만 보안요원이 팀 동료인 웨인라이트 팬이어서 허락을 얻어 공원에서 80m 캐치볼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당시 김광현은 SNS에 우울한 심경을 담은 글을 쓰기도 했다. 그는 “야구하고 싶어서 미국에 왔는데 (하지 못 해서) 정말 우울하고 힘들었다”며 “그때 SNS에 ‘행운을 잡으려면 지금 버텨야 한다’고 썼다. 경기하지 못한 4개월을 버틴 게 나중에 행운으로 작용한 것 같다. 어떠한 시련과 역경도 잘 버텨내야 운이 따른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고비가 잇따랐지만 김광현은 호투를 펼쳤다. 그는 정규시즌을 8경기 3승 평균자책점 1.62로 마쳤다. 포스트시즌에서는 팀 1선발로 나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시리즈 1차전에서 3⅔이닝 5피안타 3실점 했다. 위기의 메이저리그에서도 비교적 훌륭히 연착륙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광현은 올 시즌 투구 내용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실점을 최소화한 건 긍정적”이라면서도 “야구는 결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 이 정도 평균자책점을 기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몸 상태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내년에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다”고 전했다.
현지에서 ‘운이 따랐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담담하다”라며 “운도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위해 열심히 훈련했다. 노력했으니까 운도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운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마 내게도 운이 따르지 않은 날이 올 것이다”라며 “그땐 실력으로 극복하겠다”고 말했다.
김광현은 “진정한 메이저리거가 되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며 “내년에 162경기를 모두 치를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해서 오늘부터 훈련할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