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은 22일 사의를 표명하면서 과거 의정부지검장으로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장모 최모씨를 불구속 기소한 ‘잔고증명서 위조 사건’을 언급했다. 그는 검찰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처음에는 야당에서 수사 필요성을 주장하자 여당에서 반대했고, 그 후에는 입장이 바뀌어 여당에서 수사 필요성을 주장하고 야당이 반대했다”고 했다. 박 지검장은 최씨를 재판에 넘긴 뒤 지난 8월 인사에서 서울남부지검장으로 부임했다.
박 지검장은 ‘추미애 사단’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정치권과 언론이 그의 인사와 최씨 사건 처리 이력을 결부해 해석한 것이다. 지난 8월 인사에서 윤 총장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 서울남부지검이 국회의원 사건들을 다수 담당하는 요직으로 분류된다는 점 등이 함께 거론됐다. 하지만 정작 박 지검장은 이런 정치적 해석들을 억울해 했다.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잇따른 폭로로 재차 정치권의 관심이 많아진 최근엔 주변에 “힘들다”는 말도 건넸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글을 읽은 한 현직 검사는 “본인이 ‘윤석열 사단’도 ‘추미애 사단’도 아니라고 항변하는 듯했다”고 말했다. 박 지검장은 “검찰은 어떻게 해야 공정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박 지검장은 “의정부지검 수사팀은 정치적 고려 없이 잔고증명서의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선택해 기소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검찰이 이렇게 잘못 비춰지는 것에 대해 더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지경”이라고도 했다.
그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9일 행사한 수사지휘권에 대해 “총장 지휘 배제의 주요 의혹들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윤 총장 가족 사건에 대한 수사 지휘에 대해서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고 했다. 그간 윤 총장이 스스로 개입하거나 보고를 받지 않아 왔음을 감안하면 불필요한 수사지휘였다는 평가였다.
최근까지 박 지검장을 대면했던 검찰 구성원들도 그의 의중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가 최근까지도 수사팀 구성에 조언을 구하는 등 의욕적인 모습이었다는 말도 나왔다.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내내 박 지검장의 이프로스 글에는 “뜻을 철회해 달라”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말라”는 댓글이 수십개 달렸다.
윤 총장은 국감 첫 질의에 답변하기에 앞서 참모가 건넨 쪽지를 펴 들고 박 지검장의 사의 표명 사실을 법제사법위원회에 알렸다. 그는 “일단 지금 막 보고받은 상황”이라며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이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렸다’는 글을 게시하고 사의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윤 총장은 “남부지검은 박 지검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최선을 다해 수사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추 장관은 “중대한 시기에 책무와 권한을 부여받은 검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냈다. 추 장관은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금명간 후속 인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현수 이경원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