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의심의 여지 없이 가장 훌륭한 이 작품은 절묘한 부드러움과 담백한 아름다움으로 이민자의 이야기와 가족 드라마를 그려내고 있다.”(워싱턴포스트)
지난 2월 열린 제36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이 영화는 자국 영화 경쟁 부문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받으며 단숨에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이달 중순 열린 제8회 미들버그영화제에서는 배우조합상인 ‘앙상블 어워드’ 부문을 수상했다. 미들버그영화제는 아카데미상의 길목으로 여겨지는 주요 영화제 가운데 하나다.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미나리’를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각본상 후보로 예측했다.
외신이 집중적으로 조명한 이 영화는 ‘미나리’. 이 영화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세계적으로 화제 몰이 중인 이 작품이 다름 아닌 ‘한인’의 이야기여서다. 배우 브래드 피트의 플랜B가 제작, A24가 투자한 할리우드 작품으로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등이 출연하고 한국계 미국 감독 정이삭(리 아이작 정)이 메가폰을 잡았다. 할리우드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미나리’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은 또 다른 ‘로컬’의 세계화인 셈이다.
그만큼 21일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내 처음으로 선보이는 ‘미나리’에는 큰 관심이 쏠려 있다. 영화는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에 이민한 한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캘리포니아주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던 제이콥(스티븐 연)은 농장을 일구겠다며 아내 모니카(한예리), 딸 앤(노엘 케이트 조), 아들 데이비드(앨런 김)와 함께 아칸소주 시골로 향한다. 그중 막내 데이비드는 선천적으로 심장이 좋지 않다.
제이콥은 밭을 갈고 고추 등 한국 작물을 키우지만 이내 지하수가 고갈되고 어렵게 수확한 작물도 잘 팔리지 않는다. 극 중심에는 이런 삶에 지쳐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고픈 모니카와 가족보다는 꿈이 우선인 제이콥의 갈등이 놓인다.
묘한 리듬감은 할머니(윤여정)가 등장하면서부터 생겨난다. 모니카는 아이들을 돌봐달라며 한국에 있는 엄마를 부른다. 하지만 데이비드, 앤은 자신들을 아끼는 할머니를 불편해한다. 독특한 성격과 행동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는 한국전쟁의 당사자이면서 손주에게 화투를 가르치는 ‘한국적’인 할머니와 이민 2세대인 데이비드와 앤을 병치하는 방법으로 이민자의 부유하는 정체감을 두드러지게 만든다. 이 작품에서 할머니는 또 가족이 재화합하고 새 삶을 살도록 극적 계기를 마련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영화의 제목 ‘미나리’ 역시 할머니에게서 따왔다. 할머니는 데이비드와 냇가에 미나리를 심으며 이렇게 말한다. “미나리는 최고야. 가만히 둬도 잘 자라. 김치에 넣을 수도 있고, 찌개를 끓일 수도 있어. 몸에도 좋고.” 제이콥-모니카가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다며 그리워하던 미나리. 미나리는 곧 선입견과 경제적 어려움 등 척박한 환경에서 끝내 꽃피운 한인 이민 1세대의 은유다. “미나리/ 미나리/ 원더풀 미나리”라며 데이비드가 흥얼거리는 노래는 감독이 그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응원이다. 감독은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영상이 시종일관 힘 있고 단단하다. 음악도 치밀하다. 아역까지 연기가 빈틈없다. 무엇보다 유쾌한 할머니에서 아픈 노년까지를 아우르는 윤여정의 호연이 극을 튼튼히 받친다. 아카데미 수상 예측 사이트 ‘어워즈와치’가 윤여정을 여우조연상 후보로 예측했을 정도다. 감동적인 가족 성장 서사에 더해 이민자의 삶 근저까지 파고든 ‘미나리’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단연 화제의 작품으로 자리매김할 듯하다.
부산=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