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도심의 문화재급 근대 건축물이 사라졌거나 철거될 위기를 맞고 있다. 역사·문화적 보존가치가 높은데도 아파트 건립 등 개발사업에 밀려 잇따라 헐리는 신세다.
22일 광주시가 2010년부터 추진 중인 ‘근대 건축물 기록보존 사업’과 2002년 실시한 ‘근대 건축물 전수조사’에 따르면 종교·교육·산업 등 9개 분야 100여 곳의 건축유산 중 그동안 20여 곳이 그동안 아파트 신축 등 도시개발을 이유로 소멸됐다.
충장로 5가 옛 조흥은행 건물의 경우 2018년 1월 헐린 뒤 지금까지 그 부지가 공터로 남아 있다. 1943년 당시 한성은행과 합병해 문을 연 옛 조흥은행 광주지점이 1962년 1월 신축한 해당 건물은 광주의 대표적 근대 건축물이다.
옛 삼산당약국 자리에 들어선 이 건물은 2006년부터 신한은행 충장점 사옥으로 사용되다가 건설업체에 매각된 뒤 순식간에 헐렸다.
1924년 개교한 광주 장동 옛 광주여고 건물도 철거된 뒤 주차장 부지로 사용돼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2010년 3월 화정동으로 옮겨간 광주여고는 명실공히 호남지역 여성중등교육의 산실이다. 이 학교 옛 건물에서는 수많은 여성 지도자가 학창시절을 보냈다.
옛 전남경찰청 민원실과 수피아여중 특별교실 등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각종 건물과 1950년 6·25한국전쟁 직후 들어선 계림극장, 조대부고 본관 등도 아시아문화전당 건립, 오피스텔 신축 등을 위해 철거됐다.
1930년대 일제수탈의 아픔과 산업화 과정의 애환을 간직한 임동 전방·일신방직 내 각종 근대 건축물은 금명간 철거될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7월 해당 부지 30여만㎡가 서울의 한 부동산 개발업체에 매각되면서 1934년 방직공장 부설시설로 세운 철골 구조 화력발전소, 저수조, 망루 등 지금까지 원형 보존돼 건축학적 가치가 높은 각종 시설들이 사라질 우려가 커졌다.
부동산 개발업체는 전방·일신 방직 부지에 주상복합 아파트와 호텔, 유통·업무 시설 등을 신축할 계획이다.
1907년 문을 연 광주중앙초교 본관과 1933년 광주의 첫 성당으로 건립된 북동성당 등 7곳도 재개발 사업지 등에 포함돼 철거될 처지에 놓여 있다.
현재 문화재로 지정돼 관리·보호 중인 근대건축물은 전남여고 옛 본관, 조선대 의대 본관, 전남대 인문관 1호관, 수피아여고 예배당 등 27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보존가치가 높은 근대 건축물 40여곳은 관리주체조차 명확하지 않아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소리없이 헐리는 문화재급 근대 건축물에 대한 보존·관리대책을 서둘러야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광주시가 직접 매입하거나 기금을 조성해 보존대책을 실현하는 등 공유 자산화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는 현재 근대 건축물 설계도와 도면 등을 확보해 보관하기 위한 기록보존 사업만 벌이고 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임동 전방·일산 방직은 공익적 가치를 살린 개발계획을 통해 근대 건축물을 최대한 보존하고 후손들에게 원형을 물려줄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