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한 이들에게 접종된 백신의 종류는 다양했다. 대부분은 국가 무료 예방접종에 조달된 물량을 맞았으나 특정 제조사 백신의 문제라고 보기 어려웠고, 제조사·종류가 같더라도 로트번호(LOT·고유 제조번호)가 달랐다. 방역 당국은 백신 자체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질병관리청이 21일 오후 2시까지 파악한 독감 백신 관련 사망자 9명이 맞은 백신의 종류와 로트번호를 보면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첫 번째 사망자인 인천 10대 사망자와 지난 20일 전북 고창에서 발생한 두 번째 사망자는 모두 보령바이오파마의 ‘보령플루Ⅷ테트라백신주’를 맞았으나 로트번호가 달랐다. 만약 이 백신에서 문제를 찾으려면 로트 번호가 같아야 설명이 가능하다.
대전 사망자는 한국백신사의 ‘코박스인플루4가PF주’를 접종했다. 대구에서 사망한 남성은 LG화학의 ‘플로플러스테트라프리필드시린지주’를 맞았다. 사망자 9명 중 2명은 녹십자의 ‘지씨플루쿼드리밸런트’를 맞았는데 이 역시 로트번호가 달랐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생산한 ‘SK바이오스카이셀플루4가’를 맞은 사망자 2명도 로트번호가 달랐을 뿐만 아니라 한 명은 유료백신 물량, 한 명은 국가 조달 물량이었다. 경기도 80대 사망자는 ‘보령플루V테트라’를 맞았다.
백신제조사, 로트번호는 다르지만 9명 중 8명은 국가 조달 물량을 접종받았다. 올해 인플루엔자 백신 제조·수입업체는 10곳이며 이 중 7곳이 국가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녹십자 LG화학 보령바이오파마 일양악품 한국백신 사노피파스퇴르 SK바이오사이언스 등이다. 보령제약과 동아ST,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민간 의료기관에 유료 접종분 백신을 공급하고 있다.
사망자들이 맞은 백신은 상온 노출, 백색 입자 등으로 물의를 빚은 물량은 아니었다. 이 때문에 앞선 백신 사고가 잇단 사망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독감 백신의 제조 방식이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는 추측도 나온다. 백신은 달걀을 활용해 생산되는 ‘유정란 백신’과 동물 세포를 이용한 ‘세포배양 백신’ 2가지 방식으로 제조된다.
한편에선 올해 국가 조달 백신이 3가에서 4가로 변경된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지만 가능성은 적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3가 백신은 A형 바이러스 2가지와 B형 바이러스 1가지를 예방하는 백신이다. 4가 백신은 인플루엔자 A형과 B형 바이러스를 각각 2가지씩 예방한다.
정은경 질병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부분의 유료접종은 작년에도 4가를 접종했다”면서 “임상적으로는 3가와 4가 백신의 안정성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질병청과 전문가들은 사망사례에서 백신의 공통점이 발견되지 않는 만큼 백신 자체의 문제로 보긴 어렵다고 밝혔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