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21일 오전과 이른 오후 영화의전당 주변은 개막일인데도 붐비지 않고 차분했다. 국내외 톱스타를 보기 위해 모인 팬도, 영화 관계자도, 취재진도 없어 때로 한산하기까지 했다. 초청작을 보러 하나둘 현장에 모인 관객은 8개 게이트에서 방역절차를 마친 뒤 영화의전당 안으로 차례차례 입장했다. 2017년부터 세 번째 영화제를 찾았다는 직장인 공동건(27)씨는 “아침 일찍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눈에 띄는 초청작이 많아 기대된다”면서도 “취소된 행사가 많아 분위기가 썰렁한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우여곡절을 겪은 부산국제영화제가 21일 개막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일주일 전까지도 취소를 가늠했던 올해 영화제는 최근 오프라인 개최를 확정, 10일 동안 68개국에서 모인 192편을 선보인다. 앞서 칸 국제영화제 등 세계적인 영화제가 줄줄이 취소·연기된 상황에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코로나 시대 오프라인 영화제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시험대의 의미를 지닌다. 이르긴 하지만 개막일 부산에 모인 관객 반응을 종합하면 철저한 방역 아래 수작들을 선보인다는 영화제 목적은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러 행사가 취소된 탓에 시민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로서는 아쉬움도 남겼다,
영화제 반응 자체는 성공적이다. 정상적으로 개최되지 못한 세계 영화제 수상작·화제작이 대거 라인업에 포함되면서 관심이 불붙었다. 폐막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비롯해 ‘미나리’ ‘트루 마더스’ ‘스파이의 아내’ 등 기대작들이 부지기수다. 특히 상영관을 영화의전당 6개 상영관으로 한정하고 1편당 좌석 25%, 1회 상영으로 제한하면서 티켓팅은 피가 튀겼다. 20일 오전 10시 기준 상영작 티켓 88%가 동났다.
하지만 치열한 예매 경쟁을 뚫은 이들 중에는 영화계 종사자나 마니아가 눈에 띄었다. 단편 영화를 제작한다는 백지은(23)씨는 “프리미어(세계최초) 상영이 많은데 수용은 적다 보니 15일 오후 2시 표 판매에 맞춰 수강 신청하듯 대기를 해 표를 구했다”고 전했다. 대학에서 영상을 전공한다는 유승원(22)씨는 “매년 참여해왔는데 코로나19에도 영화제를 열어준 것이 고맙다. 하지만 상영관이 적어 아쉽다”면서 “‘미나리’ 등은 못 보고 가능한 대로 여섯 작품을 예매했다”고 했다. 티켓 예매·발권이 방역 차원에서 전부 온라인으로 전환된 터라 온라인 예매 방법을 몰라 행사장 앞에서 발길을 돌린 장년층 관객도 이따금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로지 안전한 영화 상영에만 집중한 올해 영화제는 하이라이트인 레드카펫 행사를 비롯해 야외무대 인사 등 축제 성격의 오프라인 행사를 전부 취소했다. 별도 개막식도 없다. 이날 오후 8시 야외극장에서 상영되는 개막작 ‘칠중주: 홍콩이야기’로 영화제 시작을 알린다. 기대작이기는 하지만 야외극장(4000석)에 좌석 거리두기를 적용해 600명만 들어가는 터라 예년의 뜨거운 분위기를 내기는 힘들 전망이다.
이런 한계에도 부산국제영화제를 향한 영화계 반응은 긍정적이다. 팬데믹 속에서 방황하던 수작들이 관객과 만날 수 있게 된 흔치 않은 기회여서다. 티에리 프레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스물다섯, 아직 청춘인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적으로 축복받은 땅이자 영화의 나라인 한국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아울러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아장커, 봉준호, 이창동 등 국내외 유명 감독들의 응원도 이어지고 있다.
방역 시스템도 세계 영화제에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만난 영화제 관객은 대체로 “방역이 체계적이어서 안심된다”는 평을 덧댔다. 6년째 영화제에 오고 있다는 직장인 한혜원(25)씨는 “오늘 아침 김해에서 출발할 때도 코로나19로 불안했는데 막상 와보니 지금 시국에 최선을 다한 것 같다”며 “팔찌를 차야 입장이 가능한 시스템이나 좌석 거리두기 등이 철저해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가장 이목을 끄는 건 관객 동선 정리를 위해 영화의전당 곳곳에 설치된 펜스들이다. 펜스 끝에는 게스트 및 스태프와 관객이 입장하는 총 12개의 게이트가 설치됐다. 관객은 1차로 모바일 QR코드 등록과 손 소독, 체온측정을 한 뒤 팔찌를 배부받는다. QR코드가 낯선 관객은 기재된 ARS 번호로 전화를 해 보안 절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영화관 앞 게이트에서 손 소독과 체온측정, 티켓 확인 작업을 한 번 더 거치게 된다. 영화관 좌석은 전부 2칸 이상씩 띄어져 있다.
감염내과 전문의와 부산 시민 방역추진단장 등이 포함된 방역 자문단을 구성한 부산국제영화제는 현재 20여명의 TF 관계자가 하루 3차례 공동상황실에서 방역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최학주 부산국제영화제 방역 TF 팀장은 21일 본보와 통화에서 “손 소독과 체온체크를 두 번씩 해야 하는 불편함은 있겠지만 개인 방역은 수시로 하면 더 좋다고 판단했다”면서 “스태프·게스트는 바코드로 실시간 동선을 모니터링 할 수 있고, 극장에 설치된 70여개의 CCTV를 재정비해 필요시 관객의 동선도 세밀히 체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영화제 기간 약 2만명의 관객이 영화의전당을 다녀갈 텐데 ‘방역 영화제’로서 좋은 선례를 남겼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부산=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