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31)는 동갑의 연인과 3년째 교제 중이지만 섣불리 입 밖에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매달 월급의 절반 이상을 저축 중이지만 나날이 치솟는 집값에 신혼집 마련의 꿈이 멀어져서다. 결혼 후 부모님 집에 얹혀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A씨는 “학자금 대출을 갚고 느낀 후련함은 순간이었다”며 “월급보다 집값이 빨리 오르니 자가는커녕 전세조차 구할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월세로 거주하는 경우 자가 거주 대비 결혼 가능성과 출산 가능성이 절반 아래로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청년층에는 집값이 결혼 장애물로, 결혼 가정에는 집값이 출산 장애물로 자리한 셈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1일 ‘주거유형이 결혼과 출산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월세로 거주하는 경우 자가 거주 대비 결혼 가능성이 65.1% 감소한다고 밝혔다. 월세로 사는 무자녀 가구에서 첫 번째 자녀를 출산할 확률은 자가에서 사는 무자녀 가구 대비 55.7% 낮았다.
한국노동패널의 최신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자가 거주보다 전세 및 월세 거주 시 결혼 가능성이 작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가 거주에 비해 전세 거주 시 결혼 확률은 23.4%, 월세 거주 시 결혼 확률은 65.1% 감소했다. 자가나 전세보다 월세 거주의 경우 결혼 가능성이 더욱 낮아지는 셈이다.
거주 형태는 출산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혼한 무자녀 가구의 첫째 출산 가능성은 전세 거주 시 자가 거주에 비해 28.9%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세에 사는 가구의 경우 자가 거주에 비해 첫째 자녀 출산 가능성이 55.7%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월세의 거주하는 부부의 절반은 출산을 포기하는 셈이다.
다만 둘째 자녀의 출산에는 거주 형태가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자녀 출산 가능성은 가구의 근로소득 증가와 함께 높아졌다.
한경연은 올해 연간 기준 처음으로 인구 자연감소가 예상되는 등 인구 절벽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주거환경 불안요인에 대해 재고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7월 출생아 수는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81년 이후 가장 적은 2만 3067명인 반면 같은 달 사망자 수는 1983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은 2만3963명으로 조사됐다.
유진성 한경연 연구위원은 “월세가 대세라는 말도 있지만 갑작스러운 월세로의 전환은 무주택자의 주거부담을 증대시키고 향후 생산인구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주거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주택공급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