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로마서 15장 9절, 에베소서 5장 19절, 고린도전서 14장 15절, 야고보서 5장 13절 등 5번이나 등장하는 살로(Psallo)라는 단어는 “악기의 현을 퉁긴다”는 뜻으로 하프의 반주에 맞춰 찬송하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예배에 사용된 악기는 장소에 따라 분명하게 구분되었고 성전 안에서 드리는 예배에서는 수금 위주의 악기를, 그리고 야외에서는 다양한 악기와 타악기를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모든 악기는 장소에 따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예배, 성전악기 또는 야외, 세속악기로 구분되며 악기가 교회에서 사용될 수 있는지 여부는 각 악기의 정체성에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클래식 작곡가는 작품을 작곡할 때 먼저 악기가 가진 고유 소리와 볼륨, 성격, 정체성을 염두에 두고 작곡하기 때문에 작품에 어떤 악기가 사용 되느냐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어떤 음악이 되는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만약 교회에서 대중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예배에 대중음악형식과 음악을 사용한 곡을 연주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음악뿐만 아니라 악기 역시 신중하게 생각하고 사용하여야 한다. 신명기 12장 4절과 31절에서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을 섬기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예배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다. 즉 세상이 교회를 닮아가도 교회는 결코 세상의 것을 닮지 말라고 당부하신 말씀이며 구약의 성전에 사용되는 모든 기물은 구별되고 흠 없고 깨끗하고 거룩한 것으로 이것은 비싼 것이 아니라 세상 것과 구별된 것이라는 뜻이다.
현재 우리가 구약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고 하지만 교회는 영원히 거룩하고 구별된 장소인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음악이 교회의 영성, 거룩성을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고 초기와 중세 교회에서는 악기가 이방 신을 섬기는 데 사용한다고 해서 금지하기도 하였다. 역사적으로 각 시대에 악기를 어떻게 생각하였느냐를 살펴보면 모두 악기가 지닌 고유한 악기 정체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다시 말해 사용하는 악기가 사람에게 주는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뜻으로 우리가 사용하려는 악기가 세상에서 어떠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가에 따라 예배에서의 사용 유무가 결정되어야 한다.
초기 오르간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악기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기독교 초기 시대의 오르간은 현재의 모습과 소리가 아주 달랐고 심지어 야외축제나 경기에서 사용될 만큼 소리가 너무 커서 당시 교회지도자들이 오르간 소리를 아이들에게 듣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오르간의 구조와 소리가 다듬어지면서 중세 교회에서부터 오르간을 사용했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74)의 글에 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미 13세기부터 오르간은 예배에 사용되었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보들레이언 도서관에는 14세기 설교문과 오르간 악보를 하나로 묶은 필사본이 있으며 1460경에 발행된 독일 북스하임(Buxheim)수도원에서 발행된 악보집에는 무려 50여곡의 예배의 도입부에 사용되는 전주곡(Praeambulum)이 수록되어 있다. 1608년 이탈리아의 오르간 제작자 콘스탄쪼 안테그나티(Costanzo Antegnati,1549-1624)는 오르간을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데만 사용하고 다른 세속적인 용도로는 하지 말 것”이라고 말하였고 1617년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회중 찬송가인 코랄(Chorale)이 탄생하면서 오르간이 회중 찬송가를 반주하는 악기로 사용되었다.
오르간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 중 하나는 존 칼빈(장 칼뱅,John Calvin)은 오르간을 예배에 금지하고 울리히 쯔빙글리(Ulrich Zwingli)도 예배에서 음악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던 예를 들면서 오르간이 예배 악기로 부적합한 악기라고 주장을 하는데 칼빈의 이유는 오르간이 가톨릭 문화의 유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두 사람 모두 예배의 본질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려는 이유였으며 음악이나 악기를 절대 경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며 예배 개혁자로서 이전 가톨릭에서 행해지던 것과 회중(교인)들이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구별하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1300년 중세 음악기인 기욤 드 마쇼 (Guillaume de Machaut)는 오르간을 ‘악기의 왕’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왕이라는 의미는 단지 악기 크기나 소리만 염두 한 것이 아니라 악기가 가지고 있는 세속적이니 않고 격식 있는 성품을 가진 악기라는 뜻인 것이다. 유럽교회는 오랜 역사를 통해 오르간을 예배악기로 인정하였지만 영국 청교도들로 시작된 미국의 예배는 다양한 교파와 함께 발달하여 유럽과는 다른 문화를 가진 예배음악이 성장하게 되었지만 현재까지도 복음성가와 CCM 위주로 찬양하는 독립교회나 침례교회를 제외하고는 장로교, 감리교, 성공회, 루터교, 가톨릭에서는 아직도 정통적으로 오르간을 예배 악기로 인정하고 널리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50년 이전에는 교회에서 풍금(하모니움)과 오르간(문헌상에 보면 이미 6·25전쟁 이전 5대의 파이프오르간이 설치)을 예배에 사용하였으나 아쉽게도 전쟁 때 모두 소실되었고 이후 미국에서 선교사와 함께 피아노가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예배음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던 당시 우리에게 단순히 피아노가 신식 악기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피아노가 예배 악기로 퍼지게 된 것이며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예배에 부르던 찬송가 대부분이 예배 찬송보다는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진 복음 성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6·25전쟁이 나지 않았더라면 전쟁 이전의 유럽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된 풍금과 오르간을 사용하는 문화가 더욱 지배적이었을 것이다.
교회는 예배 악기를 결정할 때 신학, 문화, 경제, 음악적인 면을 모두 고려하여 결정해야 한다. 아모스 6장의 아모스 선지자가 우리에게 그 혼돈 손에 있는 주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상기시키고 있으며 “비파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면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라는 말처럼 결코 예배 악기는 손쉽게 가질 수 있다거나 연주하고 싶다는 이유로 예배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무분별하게 이교도 의식에 악기를 사용했던 실수를 우리가 되풀이해서는 안 되며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형식과 내용 성격을 잘 판단하여 가장 훌륭하고 영적으로 적합한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영적인 지혜가 요구되는 것이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