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KAI 고문 출신, 차세대 헬기 연구용역 처음부터 참여했다

입력 2020-10-20 11:28 수정 2020-10-20 11:40
블랙호크(UH-60) 기동헬기(왼쪽)와 수리온 한국형 기동헬기의 모습

수조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차세대 헬기사업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핵심 근거로 쓰일 연구용역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고문을 지낸 산업연구원 방위산업센터 총책임자가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이 인물이 연구용역을 시작하기 전부터 수차례 차세대 헬기사업 관련 사전협의에 참여했던 정황도 확인됐다. KAI 고문으로 재직하는 기간에 국가 기밀을 다루는 협의에 참여한 터라 파장이 예상된다.

20일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입수한 산업연 안모 방위산업연구센터 센터장의 출장 내역에 따르면 올해 2월 26일 안 센터장은 한국국방연구원(KIDA) 관계자와 서울의 한 중식당에서 만나 ‘무기체계 성능개량사업 파급효과 분석 방법에 관한 회의’를 진행했다. 이때 사용한 경비는 ‘한반도 평화체제 진전에 대비한 방위산업 구조 개선방안’이라는 연구 과제를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지출됐다. 이 회의에선 무기체계(차세대 헬기) 성능개량과 구매, 비용분석과 파급효과 분석, 산업 발전 관련 논의가 이뤄졌다고 회의록에 명시됐다.

안 센터장은 이후 3월 6일 ‘헬기사업 연구’를 목적으로 산업부 자동차항공 산업 담당 사무관을 만났다. 안 센터장이 만난 산업부 사무관은 추후 산업연에 차세대 헬기사업 관련 연구용역을 수의계약으로 맡긴 과제 담당자이기도 하다.

안 센터장은 또 3월 12일 국방부에서 열린 ‘국산 헬기 개량사업 파급효과 분석 연구 협의’라는 산업부 주관 회의에도 참석했다. 이 회의에선 국방부와 산업부의 주요 인사들이 UH-60, 수리온 개량사업 관련 사전 연구내용과 향후 필요한 자료가 무엇인지 논의했다.

안 센터장은 이후 3월 16일 산업연에서 열린 ‘UH-60 성능개량 수리온 대체 진행현황 설명회’라는 이름의 과제토론회에도 참석했다. 이 토론회에는 외부인사로 KAI 관계자가 참석했다고 명시됐다. 추후 차세대 헬기사업 연구용역을 맡은 산업연 방위산업연구센터 연구원도 토론회에 참석했고, 이들은 KAI 측으로부터 수리온 헬기 대체 사업의 전반적인 현황 등을 설명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토론회에선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이 이견을 보이고 있는데 국내 헬기 산업의 발전 측면에서 재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발언도 나왔다. 실제 산업연의 연구용역은 ‘수리온 전면 도입’이 산업 파급효과 측면에서 UH-60의 성능을 개량하는 것보다 유리하다고 결론 내려졌다.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산업연구원 안모 방위산업연구센터장의 주요 대외활동 내역.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실

방위산업연구센터의 수장인 안 센터장은 올해 초부터 지난 3월 18일까지 KAI의 비상근고문을 겸직했다. KAI의 고문으로 재직하는 동안 차세대 헬기사업 관련 사전협의에 여러 차례 참여했던 셈이다. 이후 국방부는 3월 18일 차세대 헬기 사업 발전 방향 토론회를 개최한 결과 산업통상자원부에 블랙호크(UH-60) 성능개량 및 수리온 도입의 산업 파급효과 분석 연구용역을 의뢰키로 했다.

하지만 안 센터장은 “해당 연구의 내용은 군사 기밀이기 때문에 세부적으로 어떤 논의가 이뤄지는지 알 수 없고, 연구에 개입한 바도 없다. 센터장으로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었다.

한 의원은 “안 센터장이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사전협의를 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며 “KAI로부터 자문료를 받는 센터장이 용역을 결정하는 자리에 참석했다는 것은 연구 초기 단계부터 공정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방증이다”고 지적했다.

한편 방산업계에서는 안 센터장이 KAI 고문으로 재직하는 동안에도 정부의 주요 국방 정책을 결정하는 여러 기관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의원이 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안 센터장은 현재 청와대 국방개혁비서관실 방산수출촉진 대책팀 위원, 국방부 국방개혁자문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서 지난해까지는 국방개혁TF 자문위원,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자문위원,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등도 맡았었다.

한 의원은 “방추위 전문위원은 의결권은 없지만, 발언권은 있어 전문가로서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 위원들은 그 의견을 참고해 의결하기 때문에 영향력이 있다. 특정 업체의 고문을 맡은 상태에서 발언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