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치매환자를 둔 가족들의 걱정이 늘고 있다. 활동량과 인지 자극이 부족해지면 치매 악화로 이어질 수 있지만 감염 우려 때문에 외출 등을 극도로 자제시키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나친 보호가 오히려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적정 수준의 바깥 활동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허혜경(62·여)씨도 이들 중 한 명이다. 치매 진단을 받은 지 7년 된 노모를 둔 허씨는 19일 “코로나19 때문에 벌써 몇 개월째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허씨는 어머니의 치매가 지난해 10월 이후로 눈에 띄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6년간 치매를 앓으면서도 딸은 똑똑히 알아봤지만, 올해 들어서는 환갑을 진작 넘긴 허씨를 앞에 두고 “우리 딸은 어린아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운동 능력도 떨어졌다. 산책을 즐겼던 어머니가 불과 1년만에 10분 남짓 걷는 것도 버거워하게 됐다.
허씨의 고민은 코로나19 때문에 외출을 피하게 돼 치매 관리가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좋아하던 불고기 식당에서의 외식은 고사하고 평소 즐기던 산책도 그만뒀다. 일주일에 6일 이상을 보내는 주간보호센터 이용도 꺼려졌다. 특히 지난달 초 수도권 주간보호센터에서 집단감염이 터졌다는 뉴스를 본 뒤로 걱정이 더 심해졌다. 허씨는 “면역력이 약한 고령자들이라 가뜩이나 위험한데 치매 환자 특성상 마스크 착용도 철저히 안 된다”며 “몸을 움직여야 뇌도 자극이 된다는데 외출은 못 시키겠으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하소연했다.
90대 아버지를 둔 전업주부 천모(60·여)씨 역시 비슷한 딜레마에 빠졌다. 수개월째 TV와 신문만 보고 있는 치매 환자 아버지는 아침밥과 저녁밥을 구분하지 못하게 됐지만 코로나19 걱정이 더 앞섰다. 천씨는 “부모님이 두 분 모두 고령이라 외출은 물론이고 다른 친척들의 방문도 사양하고 있다”며 “함께 사는 가족 외에는 다 무섭다”고 했다.
감염 우려로 각종 돌봄시설의 운영에 제동이 걸린 점도 가족들의 고민을 깊어지게 했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천씨의 아버지가 종종 찾았던 지역 치매안심센터는 쉼터와 오프라인 모임 등 대면 사업을 대폭 축소했다. 허씨의 어머니가 다니는 주간보호센터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외부 강사들의 출입을 금지했다. 허씨는 “집에만 있으면 인지 자극이나 학습이 아예 이뤄지지 않으니 센터를 계속 보내고 있다”면서도 “전에는 (외부 프로그램을 통해) 활기차게 노래도 부르셨는데 그런 활동이 전부 중단된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일부 치매안심센터 등 관련 기관들이 안부전화 서비스, 가정에서 이용할 수 있는 수공예 키트, 보호자·환자 대상 화상 교육 등을 제공하고 있지만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 이찬녕 고대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 환자들은 적응력이 약해 비대면 활동이나 교육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며 “보호자를 통한다고 해도 가정 내에서의 활동·교육은 전문성이 떨어지기에 결국 차선책”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에 대한 불안 때문에 모든 바깥 활동을 멈출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마스크를 쓴 채 사람이 적은 곳에서 잠시 걷는 것처럼 방역 수칙에 어긋나지 않는 야외 활동은 오히려 권장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집 안에 머무르며 TV 시청 등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하는 것은 치매의 최대 악화 요인”이라며 “그래도 외출이 불안하다면 화투나 그림처럼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계발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