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육군의 헬기운용 방안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될 연구용역이 방위산업 전문가가 아닌 섬유패션산업 전문가의 지휘 아래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육군이 운용 중인 블랙호크(UH-60) 기동헬기를 개량해 쓸 것인지, 한국항공우주산업(KAI)가 생산하는 한국형 기동헬기인 ‘수리온’으로 전면 교체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수조원의 예산이 걸린 중차대한 사안 검토 작업이 비전문가에 의해 졸속으로 진행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19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이 산업연구원과 산업통상자원부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와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부 자동차항공과는 지난 4월 수의계약을 통해 산업연에 ‘헬기성능개량 사업의 산업파급효과 분석’ 연구를 의뢰했다. 약 9000만원의 연구비가 책정됐다.
문제는 연구용역이 방위산업과는 거리가 먼 비전문가의 지휘 아래 진행됐다는 점이다. 한 의원에 따르면 해당 연구용역의 책임연구원인 산업연 박모 연구위원은 30년 가까이 섬유패션산업을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성 논란이 이는 대목이다. 이에 박 연구위원은 “‘UH-60 이 뭐냐, 수리온이 뭐냐’ 이런 부분은 중요하지 않다”며 “경제성 분석 결과를 도출하는 게 용역의 목적이라 산업 파급효과 분석 전문가인 내가 연구책임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의 방위력과 직결되는 방위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단순히 산업 파급효과 분석만을 이유로 타분야 전문가가 책임자가 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당장 업계에서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위산업 전문가는 “이런 경우에는 방위산업 전문가가 연구를 책임지고, 경제성 분석 분야 전문가는 참여 연구자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박 연구위원이 이 분야 경력으로 내세우는 단 2건의 방위산업 관련 연구에서도 박 연구위원은 경제성 분석을 위한 참여 연구자로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연구용역을 위해 진행된 각종 회의와 출장 내역에서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들이 발견된다. 지난 4~7월 회의비 지급신청서와 국내 출장신청서를 보면 박 연구위원은 총 12번의 출장·회의를 진행했다. 이 중 9번의 출장·회의는 연구용역 과제와의 관련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박 연구위원은 업계 면담이라는 명목으로 화장품, 직물직조업체 관계자를 만났고, 업무 회의에는 섬유패션, 반도체, IT 전문가 등이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의원은 “연구과제와는 전혀 관련 없는 전문가를 만나서 차세대 헬기사업을 논의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 연구위원은 “헬기동체가 다 섬유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조사하기 위해 관련 전문가들을 만났다”고 해명했다.
방산업계 일각에서는 박 연구위원은 형식상의 책임자일 뿐 실제 연구를 진두지휘한 인물이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전성필 정현수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