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홍콩 정부의 ‘범죄인 인도 조약’ 추진에 맞서 열린 시위에 꾸준히 참석하다 갑자기 자취를 감춘 64세의 홍콩 민주화 운동가가 14개월 만에 공식석상에 나서 그동안 중국 공안에 체포돼 감금·고문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알렉산드라 웡(64)은 홍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8월 중국 공안에 체포된 뒤 지난 1년여간 사실상 구금 상태에 있었다”고 밝혔다.
홍콩 출신인 웡은 자택이 있는 중국 선전과 홍콩을 오가며 민주화 시위에 참석했다. 지난해 6월부터 체포 전까지 시위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웡 할머니(Grandma Wong)’로 불렸다. 시위 현장에서는 자신의 몸보다 큰 영국 국기를 흔드는 모습이 종종 카메라에 포착됐다.
그러던 중 지난해 8월 11일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홍콩 타이쿠역 인근에서 열린 시위에서 진압 경찰과 충돌해 부상을 입은 뒤였다. 이후 인권단체와 민주화 운동가들은 웡의 소재에 우려를 표해왔다.
웡은 “당시 병원에서 부상을 치료하고 중국 선전으로 돌아가던 중 접경지역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고 털어놨다. 이후 45일 동안 5평 남짓(200제곱피트)한 방에서 26명과 함께 생활하며 공안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중국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정신 교육도 병행됐다.
중국 공안은 그를 오성홍기 옆에 몇 시간씩 서 있도록 했고, 카메라 앞에서 “고문당한 적이 없으며, 다시는 시위에 참여하거나 언론과 인터뷰하지 않겠다”는 서약도 강요했다.
웡은 “공안은 내가 어떤 혐의로 체포됐는지 알리지 않아 사실상 강제 구금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강제 구금과 정신적 학대 속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면서 “지금까지 경험한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토로했다.
강제구금에서 풀린 뒤에는 중국 산시성 북서부 지방으로 보내져 5일간 정신 개조를 위한 ‘애국 캠프’에 강제 투입됐다. 그는 그곳에서 오성홍기를 들고 사진을 찍거나 중국 국가를 부르며 돌아다니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후 1년간 자택이 있는 중국 선전에만 머무른다는 조건을 달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공안이 불시에 자택을 검문하고, 주변을 감시하는 등 사실상 가택 연금 상태였다.
지난 9월 말 보석 조건이 효력을 잃으면서 다시 홍콩을 오갈 수 있게 됐으나, 정치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다시 선전으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웡은 말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