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 인민해방군에 소속됐다는 사실을 숨긴 학자를 기소한 것과 관련해 중국이 “기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중국 내 미국인이 범법자의 신분이 될 수도 있다”고 미국에 선전포고했다. 미국인을 억류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시간)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중국이 이같은 사실을 복수의 대화 채널을 통해 수차례 전달해왔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이같은 경고를 날리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여름 미국 대학에 연구 목적으로 방문 중인 인민해방군 소속 중국인 학자들이 군에 소속돼있다는 사실을 숨겼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된 이후다.
중국의 군대인 인민해방군은 중국 정부가 해외 국가의 첨단기술을 탈취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조직이라는 의혹을 받아왔다.
미 법무부는 이같은 의혹에 기반해 지난 6월 인민해방군 장교 왕신을 비자 사기 혐의로 캘리포니아 주 로스엔젤레스 공항에서 체포했다. 비자 신청 당시 중국군에서 복무하지 않았다고 거짓 진술을 한 뒤 입국해 연구 활동을 한 혐의다.
미국은 중국 외교부가 이들의 비자 사기를 도왔다고 판단하고 “중국 외교관이 스파이 행위를 했다”면서 텍사스 주 휴스턴의 중국 총영사관을 폐쇄하기도 했다.
WSJ는 “중국은 종종 외교적 보복의 수단으로 외국인을 억류하는 ‘인질 외교’를 펼쳐왔다”면서 “이미 미국 캐나다 호주 스웨덴 등 국적을 가진 시민들이 중국에서 출국 금지를 당한 선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미 국무부는 중국 내 미국인의 실제 억류 가능성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다만 국무부 대변인은 “중국에 있는 미국 시민권자들은 민형사상 문제와 관련한 사업상 분쟁이나 법원의 분쟁 해결 명령, 정부 조사가 끝날 때까지 중국에서의 출국이 금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존 디머스 법무부 국가안보담당 차관보는 중국의 이같은 행위를 ‘미국의 합법적인 기소에 대한 보복이자 협박’으로 규정하며 “중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고 싶다면 법치를 존중하고 인질 외교를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중국 정부는 그간 외교 갈등 등의 상황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상대국 시민권자를 불분명한 법적 근거를 들어 억류하는 조치를 취해왔다. 관련국은 이런 행위를 ‘인질 외교’라며 거세게 비난해왔다.
캐나다 정부가 2018년 미국 대(對)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중국 최대 정보기술(IT)기업 화웨이의 멍완저우 부회장을 체포하고 미국에 신병을 인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중국 검찰은 캐나다인 2명을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캐나다가 홍콩 민주주의 운동가의 망명을 허용한 것과 관련해서도 충페이우 캐나다 주재 중국 대사는 15일 “홍콩에 있는 30만명의 캐나다인의 건강과 안전이 걱정된다면 캐나다는 베이징의 홍콩 국가보안법 채택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위협을 하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그건 당신의 해석”이라고 답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