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독감백신 품귀… “친정까지 가서 겨우 접종”

입력 2020-10-18 16:36

서울 동작구에 사는 노모(31)씨는 다음달 아내의 출산을 앞두고 고민이 많다. 아내에게 감기를 옮길까 무서워 독감백신 접종을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아직 맞지 못했다. 직장 근처 병원엔 이미 동이 났고, 동네 병원에서도 “임신부와 12세 미만 아동에게 우선적으로 접종하고 있다”는 설명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노씨는 18일 “아내와 잠도 따로 자고 있고, 집 안에서도 점퍼를 입고 지낸다”고 말했다.

독감백신 부족으로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독감백신 접종 수요가 예년보다 많아진데다 실온 노출 사고 등으로 인한 부족분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탓이다.

가장 부족한 것은 12세 이하 아동용 백신이다. 아동용 백신은 정부가 조달하는 청소년용 혹은 노인용 백신과 달리 일선 병원에서 직접 구해야 한다. 올해는 코로나19 우려로 인해 백신 수요가 크게 늘면서 정부가 아동용 백신 단가를 낮게 책정해 제약사들이 공급을 줄였다는 설명이 현장에서 나온다. 서울의 한 개인병원 원장은 “올해는 무료 접종대상이 늘어난 데다 상온 노출 등 사고까지 겹쳐 백신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며 “올해만큼 힘든 적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원정접종’에 나서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일부 포털사이트의 맘카페 등에는 백신 접종이 가능한 병원 정보를 공유하는 글이 빠르게 늘고 있다. 30대 후반의 한 주부는 “친정이 있는 경기도 부천에 가서 초등학교 2학년생 아이의 접종을 가까스로 마쳤다”면서 “혹시 모르니 백신 제조사나 로트번호를 적어둬야 한다”고 귀띔했다. 대구의 한 맘카페에는 “보건소에 전화하면 어느 병원에 백신이 얼마나 있는지 알려준다”는 글이 올라왔다.

백신 품귀사태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19일부터 만 70세 이상 노인을 시작으로 노년층 대상 무료접종이 시작돼 일반 접종대상자를 위한 충분한 물량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국가조달물량 1218만명 분의 백신 공급을 완료해 수량부족 사태가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