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곤 밖이 아닌, 옥타곤 안에서 더 냉혹한 ‘코리안 좀비’의 모습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찬성(33·코리안좀비MMA)은 18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야스 아일랜드에서 열린 UFC 파이트나이트 180 메인이벤트에서 브라이언 오르테가(29·미국)에 심판 전원일치 판정패를 당했다. 정찬성에 ‘통하는’ 전략을 연마한 뒤 옥타곤 안에서 냉정하게 풀어낸 오르테가와, 옥타곤 밖에서 열의에 차 설명했던 오르테가 ‘맞춤형 전략’들이 전혀 통하지 않은 좀비의 이미지가 다소 슬플 정도로 상반돼 교차한 경기였다.
정찬성은 오르테가전을 앞두고 정찬성 답지 않은 ‘트래시 토킹’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부상으로 경기를 미뤘던 오르테가에 ‘도망갔다’는 표현을 썼고, 그 외 여러 격투기 프로그램에 나와 오르테가와 도발을 주고받았다. 정찬성은 부인했지만 새 소속사가 된 AOMG의 대표 박재범이 통역을 맡으면서 생긴 변화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옥타곤 밖’ 변화는 일관성이 없었다. 정찬성은 박재범이 오르테가에 뺨을 맞은 뒤 “트래시 토킹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며 갑자기 중지를 선언했다. 게다가 오르테가에 이렇다 할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패한 뒤엔 공손한 모습으로 화해를 청하기도 했다. 지켜보는 팬들의 입장에선 ‘도발적인’ 좀비에 호응해야 하는지, 원래대로 ‘인성 좋은’ 좀비에 열광해야 하는지 혼란스런 기간이었다.
옥타곤 밖의 일들과는 달리 옥타곤 안 정찬성의 모습은 딱히 변화가 없었다. 자신이 준비해온 정찬성 ‘맞춤형’ 전략을 냉정하게 풀어낸 오르테가와는 달리 정찬성 측이 ‘습관까지 모두 꿰고 있다’고 설명했던 오르테가 맞춤형 전략들은 전혀 통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날 정찬성이 준비해 온 움직임들은 군 복무 이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던 ‘좀비 2.0’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사실상 ‘변화할’ 오르테가를 예측해 대비하기보단 과거 오르테가만을 생각해 경기를 준비해온 모습이었다. 반면 오르테가 측 코너는 정찬성에 ‘통하는’ 전략을 정확하게 오르테가에 숙달시켰고, 이런 플레이 스타일은 옥타곤 안에서 증명됐다.
‘레전드’ 정찬성은 이제 33세다. 조제 알도와의 경기에서 불의의 어깨 부상으로 아쉽게 놓친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두를 절호의 기회를 또 다시 놓쳤고, 이제 길을 돌아가야 한다.
때문에 옥타곤 밖에서 정찬성에 ‘트래시 토킹’ 같은 ‘맞지 않는 옷’을 입히는 혼란스런 시도는 이제 잠시 접어둘 필요가 있다. 정찬성은 인성 좋은 사람이고, 그건 그의 행동이나 인터뷰 내용 같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모든 격투기 팬들이 이미 알고 있다. 정찬성은 이미 그 자체로 ‘상징적’인 선수고, UFC 측이나 팬들의 관심을 모아야 하는 신인급 선수가 아니다. 다른 이미지를 덧씌우는 의미 없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다.
반면 옥타곤 안에선 보다 냉혹해질 정찬성이 필요하다. 정찬성은 타격이든, 레슬링이든, 서브미션이든 격투기의 모든 부분에서 톱 클래스 실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군 전역 후 첫 패배였던 야이르 로드리게스 전에선 상대 도발에 착하게 반응해주다 경기 종료 직전 불의의 일격을 받아 패했다. 오르테가전에서도 라운드가 끝나고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오르테가와는 달리 글러브 터치를 시도하는 등 상대방을 너무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를 패한 뒤 분노하기보단 먼저 오르테가에 다가가 화해를 시도하는 사람 좋은 모습도 사실 경기를 이기고 나서야 더욱 의미 있었을 행동이었다.
3년 넘는 공백을 극복하고 자신을 한 차례 넘어선 ‘스마트 좀비’의 모습을 보여준 정찬성이 다시 자신을 넘어서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을까. 더욱 냉철한 상대 분석을 통해 옥타곤 안에서 더욱 냉정해질 좀비의 모습이 기대된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