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죄송합니다. 몸이 힘들어 내일부터 출근하기 힘듭니다. (관리)소장 대체 부탁합니다.”
악성 민원에 2년 가까이 시달리던 아파트 관리소장 A씨가 2017년 7월 회사 대표에게 남긴 문자 메시지였다. 대표는 “며칠 쉬고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A씨는 이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 측은 업무상 재해를 주장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A씨의 사망은 개인의 경제적 문제와 정신적 취약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은 아파트 입주민의 악성 민원이 A씨의 극단적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며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경남 양산 소재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있던 A씨는 주민 B씨에게서 1년8개월간 지속적이고 반복된 민원 제기를 받아왔다. B씨는 근무시간이 아닌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도 A씨의 개인전화로 연락해 언성을 높이며 층간소음 관련 민원을 제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새벽 4시30분에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건 적도 있었다. 2017년 7월에는 공개된 장소에서 1시간 동안 A씨를 질책하고 폭언을 했다. 주차장에 CCTV 사각지대가 있는데, 그곳에서 자기 차량이 훼손되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도 했다.
유족은 이 같은 내용을 토대로 “입주민 민원 처리 문제로 장기간 업무상 스트레스가 있었고, 사망 직전 악성 민원인에게서 층간소음 민원처리로 부당하고 모욕적인 항의를 받았다”며 업무상 재해를 주장했다. 이에 근로복지공단은 A씨의 과거 의료기록에 부동산 사기와 관련된 경제적 문제가 언급된 점을 이유로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유족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유환우)는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지급하지 않기로 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승소했다고 18일 밝혔다. 재판부는 “입주민의 지속·반복적 민원 제기로 인한 업무상 스트레스가 개인적인 경제적 문제와 정신적 취약성 등 요인에 겹쳐 우울증세가 유발 및 악화됐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결국 B씨가 공개된 장소에서 폭언을 한 게 A씨의 사망 전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