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문재인 대통령)는 우리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존재 양식을 결정할 수 있는 최고의 위치에 있는 정치인입니다. 그의 정치적 이념에 대하여는 표현의 자유가 극대화되고 법원의 개입은 자제돼야 마땅합니다.”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측 변호인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항소심 선고에 불복해 제출한 상고이유서에 적은 문장이다. 고 전 이사장은 2013년 1월 보수 성향 시민단체의 신년하례회에서 18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였던 문 대통령을 가리켜 “문재인은 공산주의자이고, 그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라고 말한 혐의(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표현의 자유 한계 내에 있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1심과 달리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고 전 이사장 측은 최근 대법원에 제출한 상고이유서에서 “사실 적시가 아니라 문 대통령의 수많은 종북적 정치활동을 바탕으로 피고인 특유의 경험을 종합해 내린 평가 또는 의견표명”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사실 적시가 아닌 단순한 의견 표명으로 판단될 경우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법리를 짚은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고(故) 이도형 전 한국논단 대표가 1997년 대선 후보였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가리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체제전복을 꾀한다”고 표현해 기소된 사례를 들었다. 당시 대법원은 ‘사실 적시가 아닌 의견 표명’이라며 이 표현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신 “고정간첩과 내통했다” “국가기밀을 북한에 누설했다”는 등의 다른 표현들은 허위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으로 인정했다.
고 전 이사장 측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부부를 가리켜 ‘종북’ ‘주사파’ 등의 표현을 사용한 변희재씨에게 “의견 표명에 해당한다”며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도 상고이유서에 포함했다.
고 전 이사장 측은 자신의 발언이 사실 적시로 판단되더라도 표현의 자유에 따라 보호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근거로는 “좌와 우의 이념문제에 관한 표현의 자유는 넓게 보장돼야 하고, 부분적 오류나 다소의 과장이 있더라도 섣불리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시를 적었다.
특히 고 전 이사장 측은 공적 인물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했다. 공적인 존재의 정치적 위상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가 가진 정치적 이념이 국가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므로 이에 비례해 표현의 자유도 더욱 확대돼야 한다는 취지다. 고 전 이사장 측은 “개연성이 있는 한 광범위한 문제제기가 허용돼야 한다”며 “쉽게 법원이 개입해 사법적 책임을 물으려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 추세도 자신의 주장과 동일선상에 있다는 게 고 전 이사장 측 입장이다. 고 전 이사장 측은 대법원이 지난해 11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 제재를 부당하다고 판단한 것과 지난 7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무죄 취지로 본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