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쇼 빌미로 슬그머니 수신료 올리겠다는 KBS

입력 2020-10-15 13:34 수정 2020-10-15 13:46
김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왼쪽)과 양승동 한국방송공사 사장이 1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한국방송공사, 한국교육방송공사 국정감사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승동 KBS 사장은 15일 “40년째 KBS 수신료가 동결됐다”며 “수신료 현실화를 고려해 달라”고 밝혔다. 양 사장은 그러면서 지난 추석 연휴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나훈아쇼를 언급했다. 제2, 제3의 나훈아쇼를 만들 수 있도록 수신료를 올려 달라는 것이다. 다만 쇼 프로그램 하나를 근거로 수신료 인상을 호소하기 전에 KBS의 방만한 내부 경영과 친 정권적인 보도행태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 사장은 이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수신료 문제에 깊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KBS 수익 가운데 수신료는 46% 전후에 머무른다”며 “넷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이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KBS도 극심한 광고 협찬 경쟁에 내몰렸다. KBS가 공공성보다 상업성으로 기울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밝혔다.

양 사장은 지난 추석 명절 KBS에서 방영한 나훈아 단독 콘서트를 근거로 들었다. 그는 “국민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제2, 제3의 나훈아 쇼를 만들겠다. 대하사극도 부활하고, 고품질 한류 콘텐츠를 계속 만들겠다”고 강조하며 지원을 촉구했다.


앞서 KBS는 지난 7월 수신료 현실화 추진 등을 담은 혁신안을 발표했다. 양 사장은 KBS가 명실상부한 국가기간방송이자 공영방송이 되려면 수신료 비중이 전체 재원의 70% 이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KBS 수신료는 월 2500원으로 수신료 비중은 45%다. 양 사장은 “앞으로 몇 년 내 사업 손익에서 수지균형을 맞추겠다는 각오로 내부 경영 혁신을 이룩할 때, 비로소 (수신료 현실화의) 문이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KBS는 올해 하반기 중 수신료 현실화 추진단을 출범해 사회적 합의를 위한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다. KBS는 지난달 말 수신료 인상안 초안을 만들어 적정 수신료를 시뮬레이션하고, 이달 중으로 경영진 검토를 마칠 계획이다. 이어 이사회 보고와 경영진 의결을 마친 다음 11월 인상안을 이사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내년 1월 안건을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하고 최종적으론 내년 4월 국회 제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결국 내년 4월 이후 수신료가 인상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다만 KBS가 전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 할 사안에 대해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보다 국회 제출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KBS는 최근 자사의 ‘검·언 유착 오보’를 두고 한동훈 전 검사장이 소송을 내자 세금으로 유명 법무법인을 선임했다. KBS 구성원이 실수했는데 책임은 전 국민이 나눠지고 있는 셈이다. KBS가 여론수렴 없이 여권과 함께 인상안을 처리해 실제로 수신료가 올라간다면 전 국민의 반발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