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4가지’ 위기신호 동시에 터졌다…방위비 압박·주한미군까지

입력 2020-10-15 12:06 수정 2020-10-15 15:22
한미 국방장관, 미국서 한미안보협의회(SCM) 회의
① 에스퍼 장관, 한국에 노골적 방위비 압박
② 공동성명에 “주한미군 현 수준 유지” 표현 빠져
③ 전작권 전환도 이견…미국 “조건 충족에 시간 걸려”
④ 한미 국방장관 공동 기자회견 돌연 취소

서욱 국방장관(왼쪽 두번 째)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오른쪽 첫 번째)이 14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에서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SCM) 회의를 갖고 있다. 주미대사관 제공

한·미 국방장관이 14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에서 가진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SCM) 회의에서 한·미 동맹을 둘러싼 위기신호들이 감지됐다.

이번 SCM 회의에서 한·미 사이의 불협화음을 시사하는 4가지 장면이 동시에 불거져 나왔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또다시 공개적으로 한국에 주한미군 방위비 인상 압력을 가했다. 또 매년 공동성명에 항상 포함됐던 “주한미군을 현 수준에서 유지하겠다”는 표현이 사라졌다.

한·미 국방수장들은 전시 작전통제권의 한국 전환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견을 드러냈다. SCM 회의 직후에 열리기로 예정됐던 공동 기자회견도 돌연 취소됐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방위비 인상 압력을 가하기 위해 무례할 정도의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전작권 전환과 방위비 분담 등 현안에 대해 진솔하게 소통했다”면서 “이번 SCM에서 발전적인 토의를 했고, 미래 지향적이고 발전적인 한·미동맹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① 에스퍼 “한국, 더 많이 기여해야”…또다시 노골적 방위비 압박

에스퍼 장관은 SCM 회의 모두발언에서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까지 거론하며 공개적으로 한국에 방위비 인상을 요구했다. 회의 시작부터 한국에 방위비 증액 압력을 가한 것이다.

에스퍼 장관은 “우리는 우리의 공동방위 비용에 대해 더 공평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그것이 불공평하게 미국 납세자들에게 지워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에스퍼 장관은 또 “미국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다른 동맹국들뿐만 아니라 한국도 우리의 집단 안보에 더 많이 기여하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을 보장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의 합의에 도달할 필요성에 모두 동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욱 국방장관은 모두발언에서 방위비를 언급하지 않았다. 에스퍼 장관도 비공개로 진행된 SCM 회의에서는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② 미국 “주한미군 현 수준 유지” 표현 거부

올해 SCM 공동성명에는 “주한미군을 현 수준에서 유지하겠다”는 표현이 빠졌다. 해마다 SCM 회의가 끝난 이후 공동성명에 포함됐던 문장이다.

지난해 11월 15일 서울에서 개최됐던 SCM 회의 이후에도 한·미는 공동성명에서 “주한미군의 현 수준을 유지하고 전투준비태세를 향상시키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올해 공동성명에는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의 무력분쟁 방지와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 증진에 중요한 역할을 지속 수행할 것임을 재확인했다”는 표현으로 대체됐다.

우리 측은 올해 SCM 공동성명에도 이 표현을 넣을 것을 제안했으나 미국 측이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방위비 증액 압박 수위를 높이기 위해 주한미군 주둔 문제를 방위비와 연계시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지만 우리 국방부 관계자는 ‘주한미군 현 수준 유지’ 표현이 사라진 것과 관련해 “병력 감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표현은 바뀌었지만, 비약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③ 전작권도 이견…한국 “조건 조기 구비”…미국 “시간 걸려”

한·미 국방장관은 전시 작전통제권의 한국 전환 문제와 관련해 공개석상에서 시각차를 드러냈다.

서욱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전작권 전환의 조건을 조기에 구비해 한국군 주도의 연합방위체제를 빈틈없이 준비하는 데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작권 전환이 예정된 시간표 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에스퍼 장관은 “전작권의 한국 사령관 전환을 위한 모든 조건을 완전히 충족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그러나 그렇게 하는 과정은 우리의 관계를 강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에스퍼 장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축소·연기되자 전작권 전환 조건에 우려를 표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미 국방장관은 이후 공동성명에서 “미래연합사로의 전작권 전환의 향후 추진방향에 대해 논의했다”면서 “전작권이 전환되기 전에 전작권 전환계획에 명시된 조건들이 충분히 충족되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전작권 전환과 관련해 “좀 더 논의하기로 했고 아직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전작권 전환 완료 시한을 정하지 않고 ‘조기 전환 추진’으로 조정했다. 그러나 군에서는 문 대통령 임기 내인 2022년 초까지 전작권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④ 공동 기자회견 미국 측 사정으로 돌연 최소

한·미 국방장관은 당초 SCM 회의 직후 공동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동 기자회견이 갑자기 취소됐다. 이례적인 일일뿐 아니라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미국 측은 SCM 개최 전에 미국 사정으로 회견을 취소하자고 전날 늦게 한국 측에 양해를 구했고, 한국 측도 이에 동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퍼 장관은 지난 8월 이후 외국 장관 등과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자회견을 취소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