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살 자녀 체험 위해…기관실 몰래 태운 얼빠진 기관사

입력 2020-10-15 11:40
코레일 ITX-청춘 열차 외관. 코레일 제공. 뉴시스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열차 기관사가 자녀에게 기관사 체험을 시켜준다는 이유로 운전실에 부인과 자녀들을 몰래 태운 사실이 밝혀졌다. 철도안전법에 따르면 운전실에는 열차 승무원 이외의 인원이 탑승할 수 없다.

뉴시스는 1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로부터 제출받은 내부 감사 보고서에서 기관사 A씨가 지난 5월 24일 자신의 가족들을 운전실에 몰래 태우고 ITX 청춘 열차를 운행했다는 내용을 포착해 단독 보도했다.

뉴시스에 따르면 춘천과 용산을 오가는 ITX 청춘 열차를 운행하던 기관사 A씨는 지난 5월 24일 춘천역에서 6개 정거장을 지나 가평역에 도착할 때까지 자신의 부인과 자녀 2명을 운전실에 몰래 태운 채 운행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9살과 7살인 두 자녀에게 기관사 체험을 시켜주기 위해서였다.

철도안전법에 따르면 이는 명백한 불법 행위다. 철도안전법 제 47조는 여객이 정당한 사유 없이 운전실 등의 장소에 출입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차 승무원 이외의 인원을 운전실에 승차시키기 위해서는 승차허가를 발급받아야 하지만 A씨는 이런 절차 없이 몰래 가족들을 운전실에 태운 채 춘천역에서 가평역까지 6개 역을 운행하다 적발됐다.

한국철도공사도 A씨가 직무를 이용해 부당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했지만 그 내용이 가볍다는 이유에서 징계는 ‘견책’ 처분에 그쳤다. ‘견책’은 공무원 징계 중 수위가 가장 낮은 처분이다. 한국철도공사는 또 승차권 없이 승차한 가족에 대해서는 기준운임요금과 기준운임의 0.5배에 해당하는 부가운임 2만1800원만 징수하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1994년 러시아 ‘아에로플로트 593편 추락사고’를 떠올리며 자녀에게 기관사 체험을 시켜준 기관사의 행위를 비판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홍콩으로 향하던 이 비행기는 기장이 당시 10대였던 자신의 아들에게 비행기 조종을 체험시켜주려다가 비행기의 자동조종 장치가 해제돼 비행기에 탑승해있던 승객 75명이 전원 사망한 사건이다.

박상혁 의원은 “코레일 직원들의 안전의식과 기강해이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끊이지 않는 비위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근무기강 상태를 점검하고 위규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김남명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