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3개월 만에 사망한 아기와 감옥에 갇혀 아기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한 인권운동가 엄마의 소식이 알려지며 필리핀 전역이 분노하고 있다.
14일 BBC는 필리핀 인권운동가 레이나 나시노(23)와 생후 3개월 만에 사망한 그의 딸 리버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도시 빈곤 단체에서 일해온 인권운동가 나시노는 지난해 11월 마닐라 사무실에서 야간 경찰의 급습으로 체포됐다. 그녀는 총기류와 폭발물 불법 소지 혐의를 받았다.
나시노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으며 “좌파 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당국이 꾸며낸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녀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나시노는 동료들과 함께 감옥에 갇혔다.
입소 후 이뤄진 건강검진에서 나시노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바로 그녀가 임신 중이라는 것이었다.
나시노의 변호사 다인라는 “그런 상황에도 나시노는 엄마가 된다는 사실을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나시노는 자신의 혐의를 벗기 위한 법적 절차가 매우 길어질 것으로 생각해 감옥에서의 출산을 준비했다.
나시노의 예상대로 구금 생활은 길어졌고, 그 사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필리핀을 강타했다.
올해 4월 변호사들로 구성된 법률 구조 단체는 임신 중이던 나시노를 포함해 바이러스에 취약한 정치범 22명에 대한 임시 석방을 촉구했다. 그러나 사법 당국은 이를 거부했다. 변호사 다인라는 “엄마와 아기를 향한 판사의 동정심과 자비는 없었다”고 전했다.
나시노는 지난 7월 1일 마닐라의 한 병원에서 딸 리버를 출산했다. 나시노와 갓 태어난 아이는 감옥으로 돌아와 임시 방에 머물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정확히 한 달 후 이별해야만 했다. 필리핀 법은 생후 한 달이 지난 아기는 재소자인 엄마와 함께 지낼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변호사 다인라는 “그녀는 아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기가 오래 머물 수 있도록 간청했다”고 전했다.
BBC는 말레이시아의 경우 3~4세, 영국의 경우 18개월까지 재소자 엄마와 아이가 감옥 안에서 함께 생활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도 여성수용자는 자신이 출산한 유아를 생후 18개월까지 감옥에서 양육할 수 있다.
나시노가 출산을 했던 병원은 “아기를 어머니인 나시노가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시노의 엄마도 매주 당국에 탄원서를 내며 딸의 석방을 간청했다.
그러나 이들의 끈질긴 호소에도 교도소는 끝내 아이를 감옥 밖으로 내보냈다. 변호사 다인라는 “교도소가 자원이 부족하다는 등 많은 변명을 내놓았다. 아이가 모유를 먹을 권리를 교도소가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갑작스러운 생이별 때문이었을까. 지난 9월부터 나시노의 딸 리버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보살핌에도 아기의 설사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상태가 악화되자 지난달 24일 리버는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필리핀 사회에서 엄마와 아이를 만나게 해 달라는 요청이 이어졌지만, 사법 당국은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결국 딸 리버는 감옥에서의 이별을 마지막으로 엄마를 다시 보지 못했고, 생후 3개월 만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법원은 나시노가 딸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3일간의 석방을 허용했다. 그러나 교도소 관리들의 개입으로 나시노는 3일 중 이틀 동안만, 그것도 하루 3시간씩 외출할 수 있었다.
나시노와 딸의 사연이 소셜미디어에 알려지며 많은 필리핀인이 충격을 받았다. 필리핀 전역에서 재소자 엄마와 아이에게 가혹한 사법제도에 분노하며 법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특히 최근 필리핀에서 트렌스젠더를 살해하고도 사면된 미국 해병대대원의 사건과 나시노와 아기의 안타까운 사연을 비교하며 당국의 ‘선택적 정의’를 비꼬기도 했다.
김수련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