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코로나 가을 재유행 현실화… 바이러스 운명론 번지나

입력 2020-10-14 17:37
코로나19 가을 재유행이 시작된 체코 프라하 풍경. EPA연합뉴스

서구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 가을철 재유행이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잠시 주춤했던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5만명대로 다시 늘어났고, 유럽에서는 전염병 확산 기세가 걷잡을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보건 전문가인 미국 베일러 의대 국립열대의학대학원의 피터 호테즈 원장은 13일(현지시간)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초 일일 신규 코로나19 환자 수는 최근 들어 가장 낮은 3만~3만5000명까지 내려갔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다시 약 5만명 수준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우려했던 가을·겨울철 코로나19 급증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며 곧 급증세가 미국 전역으로 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미 전체 50개 주(州)의 80%에 달하는 40곳에서 일주일 평균 신규 확진자 수가 전주 대비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지난 10일 이후 20곳이 넘는 주에서 일주일 평균 신규 확진자 수가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 이중 절반 정도는 이날 또 최대치를 넘어섰다. 특히 인디애나·미네소타·노스다코타·오하이오 등 북부·중서부 주들이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봄철에 이은 의료기관 마비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WP에 따르면 실제 오하이오와 펜실베이니아를 포함한 10여개 주에서는 입원 환자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최근 사상 최대 코로나19 신규 감염·입원·사망 수치를 기록한 위스콘신주의 경우 부족한 병상 실태를 보완하기 위해 이번 주 야전병원을 설립하기로 했다.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손 씻기 등의 방역 수칙만 잘 준수해도 전염병을 크게 억제할 수 있다는 게 보건 전문가들의 입장이나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WP는 “전문가들은 최근 몇 주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체념과 운명론적 생각이 미국인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중들의 비관적 인식 탓에 기본 방역 수칙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럽의 상황도 심각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주 유럽 대륙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70만명에 달한다. 약 52만명이었던 전주 대비 36% 증가했다. 현재까지 집계된 이 지역 통계치 중 가장 높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의료시스템 마비에 대한 우려가 크다. 지난 3주 동안 신규 확진자가 4배 증가한 영국에서는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으로 전국 봉쇄 정책을 폈던 지난 3월 이전보다 현재의 입원 환자 수가 더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 보건 당국은 다음주 말이면 중환자 병실의 90%가 채워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날 7400명으로 일일 확진자 수 최고기록을 갱신한 네덜란드에서는 마르크 뤼테 총리가 직접 나서 “이 같은 증가 추세가 계속될 경우 일반적 병원 진료의 75%가 최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나라 문을 걸어잠궜던 7개월 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최근 유럽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인구 10만명당 신규 확진율’을 보였던 체코에선 마스크 의무화 조치가 재도입됐고, 6인 이상 모임이 전면 금지됐다. 학교와 술집, 클럽은 다음달 3일까지 문을 닫는다.

하지만 이미 코로나19로 경제 분야가 큰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올해 초와 같은 전면 봉쇄 카드를 꺼내기도 어려워 딜레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 12일 의회에서 “국민 삶과 경제를 닫는 상황은 피하고 싶다”며 “또다시 전국 봉쇄조치를 펴고 싶지 않지만 바이러스가 활개를 치게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