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안정과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 소유.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던 정부의 기대와 달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부동산 가격은 잡히지 않고 다주택자들도 좀처럼 매도에 나서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다주택자 중에는 정부의 ‘세금 공세’에도 여유주택을 매도하지 않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집을 팔지 않는 이유로 세금보다 더 높은 미래가치와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성 등을 꼽았다.
서울에 사는 40대 직장인 김성민(가명)씨는 최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게 된 소형 아파트를 10대 자녀에게 증여하는 방안을 알아보고 있다. 이 아파트는 지은 지 30년이 다 된 구축 아파트 단지의 소형 평형인데다 재건축 가능성도 현재 희박하다. 자녀에게 증여하려면 김씨나 김씨 모친이 상속받은 후 다시 증여하거나 할증된 상속세를 내야 한다. 또 자녀의 취득세와 증여세 등 납부를 위해 김씨가 자녀에게 현금도 따로 증여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김씨가 이 아파트를 자녀에게 증여하기로 한 이유는 간단하고 경제적이다. 자녀가 20대 후반이 될 무렵에는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지금보다 훨씬 오를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때는 재건축 가능성도 더 커져 재산가치 역시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또 아파트에서 발생할 월세 소득으로 재산세 등을 감당하고, 일부는 모친의 노후보장용으로 활용할 수도 있어 ‘일석삼조’라는 판단이다.
많게는 수억원의 세금과 번거로운 절차가 예상되지만 김씨는 기꺼이 감수할 의향이 있다. 김씨는 14일 “지금 내야 할 세금보다는 나중에 아이가 성인이 돼 아파트를 사기 위해 지불해야 할 금액이 훨씬 많을 것”이라며 “상속 후 증여를 할지, 아니면 세대생략상속을 할지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양도소득세와 증여취득세 등을 인상하면 시장에 아파트 매물이 많이 나올 걸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증여가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의 월별 아파트 매매건수는 지난 8월 6880건으로 전년 동월(8586건) 대비 19.9% 감소한 반면, 지난 8월 서울의 아파트 증여는 2768건으로 전년 동월(1681건) 대비 64.7%나 증가했다. 강소정 세무사는 “양도세 등 주택 관련 각종 세금부담이 늘어나면서 올 하반기 들어 아파트 증여와 관련 상담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아파트 추가 매입으로 인해 집을 처분하기로 한 ‘일시적 다주택자’들도 당장 집을 팔기보다는 최대한 ‘버티기’에 들어간다는 속내다. 경기도 광명의 아파트에 자가로 거주하던 50대 임모씨는 내년 1월 경기 안양시의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로 했다. 애초에 실거주 목적이 아니라 프리미엄을 붙여 팔 목적으로 분양권을 구입했지만 양도소득세 인상으로 인해 임씨는 분양권 양도 대신 직접 입주해 일정 기간 살다가 처분 기한에 맞춰 다른 한 채를 팔 예정이다.
임씨가 아파트를 당장 매물로 내놓지 않는 이유는 단연 현재 가치보다 2년 후의 아파트 가치가 더 높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임씨 가족이 10여년 전 2억원가량에 분양받은 광명 아파트와 비슷한 평형대의 다른 아파트는 현재 10억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들도 “KTX역세권에 광명 뉴타운 등 호재가 많아 집값이 훨씬 오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고 한다. 집값이 가장 올랐을 때 가장 높은 수익을 보고 팔거나 집값이 떨어질 것 같은 기미가 보이면 바로 집을 팔겠다는 것이 임씨의 복안이다.
지난 7월 계약갱신청구권이 도입되면서 임씨는 기존 아파트에 세입자를 들이는 대신 20대인 아들이 혼자 살도록 할 생각이다. 최근 세입자가 있는 매물에 ‘세입자 디스카운트’가 붙어 자칫 수천만원을 손해볼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인천에 주택 2채를 보유한 50대 박영재(가명)씨는 올해 초 아예 임대사업자 등록을 했다. 전보다 많은 세금을 내고 있지만 집을 팔 생각은 없다. 박씨는 “집을 팔아봤자 어차피 수십억원 하는 서울로 옮길 수도 없는데 그냥 지금처럼 월세라도 받으며 호재를 기다리는 게 낫다고 본다”며 “보유세가 정 부담되면 차라리 지금 임차인에게 월세를 올려받고 말지, 집을 팔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이처럼 판매 대신 증여를 택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부동산 안정’을 외치는 사회지도층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김홍걸 무소속 의원은 지난 7월 배우자 명의의 서울 서초구 아파트를 매각하는 대신 아들에게 증여했다. 증여 시점이 증여취득세가 인상되기 전인데다 6억5000만원이던 아파트 전세금을 10억5000만원으로 올려받아 ‘꼼수’라는 논란이 일었다.
전문가들도 집값이 계속 큰 폭으로 오르는 상황에서 다주택자를 겨냥한 세금이 계속 강화된다한들 집값 안정화엔 한계가 있다고 본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와 종부세 강화가 내년 6월 1일 기준이라 다주택자 상당수가 버티기 작전으로 들어갔다”며 “다주택자의 급매물은 내년 상반기에 어느 정도 풀리겠지만 그 이후엔 오히려 공급이 없어 집값이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오히려 다주택자에게 일시적으로 양도세를 낮춰줘서 매도를 유도하는 게 물량 공급과 가격 안정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지애 강보현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