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소녀상’ 철거 막았다… 日 “독일 사법절차 주시”

입력 2020-10-14 16:59
지난달 독일 베를린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EPA 연합뉴스

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철거가 일단 보류됐다. 시민단체가 철거 명령 정지 가처분 신청을 행정법원에 제출하면서 관할 구청이 “확보된 시간을 활용해 절충안을 마련하자”고 나선 것이다.

소녀상이 설치된 미테구의 슈테판 폰 다쎌 구청장은 13일(현지시간)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자면서 “관련된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념물을 설계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베를린시는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논란이 된 소녀상은 당분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독일 민간단체 코리아협의회가 법원에 베를린 소녀상 철거 명령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지난달 현지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의 주도로 미테구에 소녀상이 세워지자 일본은 전방위적으로 독일을 압박하며 철거를 요구했다. 일본은 민족주의를 사실상 파시즘으로 여기는 독일의 정서를 이용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반일 민족주의로 몰아가며 이 문제를 한일간 외교 분쟁으로 확대하려 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과 화상회의를 했을 때 베를린에 설치된 소녀상 철거를 위한 협력을 촉구했다고 사실상 인정했다. 그러면서 “베를린에 그런 동상(소녀상)이 놓여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미테구는 최근 코리아협의회에 “소녀상 비문이 한국 측 입장에서 일본을 겨냥하고 있다”면서 “미테구가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을 일으키고 일본에 반대하는 인상을 준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고, 14일 철거 방침을 전했다.

이에 베를린 시민과 교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여성이라는 보편주의적 가치의 문제”라고 맞섰다. 코리아협의회는 40여개 현지 시민단체와 연대에 나섰고, 시민단체들은 이날 철거 명령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많은 국가에서 발생한 공통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연방정부는 코리아협의회가 한국 정부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보는데, 이는 매우 모욕적”이라며 “우리는 한국 정부의 문제에 대해 수없이 시위했다”고 덧붙였다.

전 세계 성폭력 생존자를 위한 현지 시민단체인 메디카몬디알레 소속의 자라 프렘베르크는 “한일 간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으로 실재했던 문제이며, 유엔에서도 인정한 문제”라고 힘을 보탰다.

다쎌 청장이 이날 기자회견에 예고 없이 찾아와 발언하자 시민들이 “우리는 베를린 시민이고, 베를린 단체”라며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미테구의 입장 변화에 따라 미테구와 소녀상 관련 시민단체 간의 협의 테이블은 조만간 마련될 예정이다. 소녀상 철거 대신 비문을 수정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베를린 소녀상을 둘러싼 움직임을 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14일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독일 국내 사법 절차이므로 향후 움직임을 지켜보겠다”면서 “정부로서는 계속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생각과 대처를 여러 형태로 설명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이) 국제 사회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을 거듭하겠다”고 덧붙였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