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공해차 의무구매도 ‘내로남불’?… 중앙부처 위반해도 무사통과

입력 2020-10-14 15:37 수정 2020-10-14 16:17

환경부가 지난해 저공해차 의무구매비율(70%)을 채우지 않은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58곳을 적발했다. 그런데 이 중 지자체와 공공기관 46곳에만 과태료 처분을 내리고 12개 국가기관에는 아무런 패널티도 적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가 국가한테 징벌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리를 앞세워 사실상의 특혜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전기·수소차 등 저공해차 의무구매비율을 달성하지 못한 수도권 내 46개 지자체·공공기관에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14일 밝혔다. 환경부는 차량 10대 이상 보유한 수도권 내 국가기관과 지자체·공공기관에 70% 이상을 저공해차로 구매·임차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과태료 부과는 이번이 처음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저공해차 의무구매비율 68.4%를 달성한 경기문화재단과 65%인 경기 안양시를 과태료 대상에 포함했지만, 의무구매비율 0%인 보건복지부·문화재청·국가인권위원회 등 국가기관에는 징벌적 책임을 부과하지 않았다. 자료=환경부

환경부 조사 결과 저공해차 의무구매비율 미달성 기관은 국가기관 12곳, 지자체 17곳, 공공기관 29곳
까지 총 58개 기관이다. 이 중 지자체와 공공기관 46곳은 100만원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반면 저공해차 의무구매비율을 채우지 못한 12개 국가기관은 과태료는커녕 아무런 패널티도 받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가기관도 지자체와 공공기관처럼 의무구매 대상이지만 징벌적 책임은 물지 않는 것이다.

12개 국가기관은 식품의약안전처, 해양경찰청,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 법원행정처, 검찰청, 통일부,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보건복지부, 문화재청, 국가인권위원회다. 이 중 보건복지부, 문화재청, 국가인권위의 저공해차 의무구매비율은 0%다. 구매비율 68.4%를 달성하고도 과태료 처분을 받은 공공기관(경기문화재단)과 극명히 대조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국가가 국가를 상태로 과태료를 처분할 순 없다”며 “의무구매비율 미달성 국가기관은 국무조정실 평가에서 마이너스를 받을 가능성은 있지만 정해진 패널티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7년 경찰청은 군용차가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국방부에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국가가 국가를 상대로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안은 아니라는 의미다.

환경부는 본지 지적에 “국무조정실에 저공해차 의무구매비율 미달성 국가기관이 정부 평가에서 불리하게 적용받도록 문서로 작성해 전달하겠다”며 “행정안전부에도 미달성 국가기관의 의무구매비율을 더욱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건의하겠다”고 개선 조치를 약속했다. 다만 국가기관에 직접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은 질서위반행위규제법 개정 등이 불가피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