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4월 급전이 필요했던 주부 A씨(23)는 인터넷 대출중개사이트를 통해 대부업체 팀장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팀장은 자기 회사가 정식 등록된 대부업체라고 소개하며 첫 거래 상환을 잘하면 다음부터 한도를 올려준다고 했다. A씨는 50만원을 대출받았다. 일주일 뒤 이자로 30만원을 얹어 80만원을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이 돈을 잘 갚으면 연 24% 금리로 최대 300만원을 빌려줄 수 있다고 팀장은 약속했다.
A씨는 2주 뒤 190만원을 갚는 조건으로 140만원을 더 빌렸다. 사정이 어려져 기한을 일주일 늘렸지만 190만원은 모두 상환했다. 약속대로 300만원을 대출해달라고 하자 팀장은 연체료 38만원을 요구했다. A씨가 돈을 입금했지만 “300만원 대출은 본사 심사 후 지급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팀장은 사라졌다. A씨가 한 달간 두 차례에 걸쳐 190만원을 빌려 쓰면서 지불한 비용은 연체료 포함 118만원이다. 연 이자 745%의 초고금리 대출이다.
올 상반기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워진 이들을 노린 불법급전대출 등 금융사기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금리 상황에서 고수익을 미끼로 한 사기도 횡행했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1~6월 불법사금융신고센터에 접수된 피해 신고가 6만3949건으로 집계됐다고 14일 밝혔다. 전기인 지난해 하반기(6만4166건)보다는 소폭(0.3%) 줄었지만 전년 동기(5만1456건)보다는 24.3% 늘었다.
신고 유형은 서민금융상담이 59.2%(3만7872건)로 가장 많고 대출사기와 보이스피싱이 34.6%(2만2213건)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미등록 대부와 불법 대부 광고가 각각 2.8%(1776건), 1.4%(912건)였다.
서민금융상담은 전기보다 9.1%(3803건) 줄어든 반면 불법 추심, 고금리, 미등록 대부 등 불법 대부 관련 신고는 2760건에서 3619건으로 31.1%(859건) 증가했다. 전년 동기(2226건)와 비교하면 62.6%(1393건) 늘었다.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은 “코로나19 사태를 틈타 자영업자·일용직 등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의 불법 대부 피해 신고가 증가했다”며 “특히 인터넷 대출중개사이트 등을 통해 접근한 불법대부업자를 통한 첫 거래 조건부 30-50 또는 50-80 대출 피해가 빈번했다”고 전했다.
30-50 대출은 A씨 사례처럼 “먼저 소액 거래로 신용도를 높여야 한다”며 일주일 뒤 50만원을 갚는 조건으로 30만원을 빌려주면서 연체 시 연장료 등으로 대출금을 늘리는 수법이다.
불법금융대응단은 “직접 만나 대출 상담을 하더라도 등록대부업체 사이트에 게시된 해당업체의 광고 전화번호로 전화해 직원과 상호명이 맞는지 확인 후 진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신용 확인 등을 목적으로 급전 이용 후 한도를 높여주겠다는 ‘첫 거래 조건부 대출’은 사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게 금감원 설명이다.
올 상반기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신고는 검찰 등을 사칭한 사례가 전기보다 7.5%(697건) 줄었다. 대신 저금리 대환대출, 통합대환대출 등을 빙자한 대출사기가 32.8%(3338건) 증가했다. 이 역시 코로나19 여파로 자금 사정이 어려워져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이들이 크게 늘었음을 보여준다. 사기꾼은 그 간절함을 파고들었다.
자영업자 B씨(26) 사례를 보자. 그는 ○○저축은행에서 연 16% 금리로 2600만원을 대출받아 이용하던 중 정부지원대환대출이 가능하다는 온라인 광고를 보고 갈아타기를 결심했다. 상담원 안내를 받아 △△저축은행에 연 6% 금리로 대환대출 3100만원을 신청했다.
입금만 남은 상황이었다. 기존 ○○저축은행 금융감독 법무팀이 전화를 걸어왔다. 상대는 “계약위반을 했다”며 2600만원을 즉시 갚으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지급정지 민원을 넣어 △△저축은행 대출도 받을 수 없다”며 “당장 2600만원의 50%라도 상환하지 않으면 신용불량자로 만들겠다”는 취지로 협박했다.
사실 연락해온 사람은 ○○저축은행 직원이 아니었다. 온라인 광고를 보고 신청한 △△저축은행 대환대출도 절차만 그럴싸하게 꾸민 가짜였다. 정부지원대환대출을 앞세운 광고부터 ○○저축은행 법무팀을 사칭한 연락까지 모두 B씨를 등쳐먹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금감원은 “온라인에서 정부지원대출, 통합대환대출 같은 광고를 보고 전화로만 대출상담을 진행하는 경우 본인이 제공한 개인정보를 이용한 사기 가능성이 높다”고 당부했다.
금융회사 대출 이용 중 다른 금융회사 대출을 알아보거나 신청하더라도 아무 법적 문제가 없다. B씨 같은 협박을 받으면 돈을 부칠 게 아니라 금융감독원(1332)이나 경찰(112)에 신고해야 한다.
고수익을 앞세운 유사수신과 금융거래를 가장한 사기 행위에 대한 제보·상담도 지난해 하반기 249건에서 올 상반기 335건으로 34.5%(86건) 늘었다. 저금리 지속으로 시장 유동성이 풍부해지자 이를 뜯어먹기 위한 범행이 더욱 판을 친 것이다. 가상통화 빙자형 유사수신(44건), 사설 FX마진거래 사기(33건), 재테크 빙자형 사기(11건) 등 다양한 수법이 등장했다.
D씨는 지인에게 소개받은 ‘□□캐피탈코인’에 투자금을 맡기면 비트코인 거래를 통해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업체가 개최한 설명회에 참석했다. 업체는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외국계 회사라며 매일 1%씩 연 365% 수익을 보장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영국 보험사에 보증보험을 가입해둬 부도가 나도 투자금의 200%를 보장받을 수 있다며 안심시켰다. 비트코인으로 출금할 수 있고 간편결제시스템도 개발해 물건이나 서비스 구매가 가능하다는 둥 갖은 장점을 열거하며 투자 유도에 열을 올렸다.
많은 돈을 투자할수록 수익이 높다는 말에 D씨는 거액을 투자했다. 초기에는 실제로 매일 일정 수익금이 들어왔다. 비로소 의심을 품었을 때는 대개 늦은 법이다. 미심쩍어진 그가 투자금을 회수하려고 하자 업체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지급을 미루다 결국 잠적했다. 금감원에 신고했지만 해당 회사가 제도권 금융회사가 아닌 유사수신 조직으로 의심되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금감원은 “유사수신업체와의 거래로 발생한 피해는 금감원 분쟁조정절차 등에 따른 피해구제를 받을 수 없음을 유의해야 한다”며 “전도유망한 사업모델을 내세우며 고수익을 보장하는 회사는 금감원 금융소비자 정보포탈 ‘파인’을 통해 제도권 금융회사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